데빌 메이 크라이-R등급관람은 반드시 보호자를 동반하시길


악마도 울고 가는 사나이가 TV를 통해 돌아왔습니다. 정말 보는 사람이 ‘졌다’라고 무의식중에 뇌까리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스타일리스트, 폼생폼사의 극단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양반이죠. 더욱이 매드하우스가 제작을 맡았으니 액션연출은 이미 반 이상 보장된 작품이라 할 수 있죠.



 도입부부터 이는 확실하게 증명됩니다. 특히 나방을 이용한 장면전환의 강조가 인상적이죠. 술집 밖의 등에 붙어있던 나방과 안쪽의 등에 붙어있던 나방은 단테가 술집에 들어올 때부터 그 존재를 확실하게 어필합니다.


싸움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방이 등으로부터 날아오른 것도 그렇고요. 싸움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나방이 주위를 얼쩡거리는데, 레벨리온을 휘두를 때 바깥의 나방이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나방 떼가 솟구칩니다. 마치 도륙당한 악마의 피가 솟구치는 걸 돌려 표현하는 것 같아 되려 임팩트를 돋보이게 해주더군요.


 마지막까지 단테의 주위를 얼쩡거리던 안쪽의 나방이 바텐더와 함께 작살나는데, 여기까지 장면의 모든 동선들이 나방과 철저하게 연결되고 있죠. 마지막 확인사살 때도 바스러진 안쪽의 나방대신 바깥의 나방이 날아들고요. 



 그러고보니 나중에 여관주인이 본색을 드러낼 때도 나방이 설쳐댔죠.


 그런데, 트레일러의 악마는 영 마음에 안 들더군요. 기습하는 주제에 예고를 날려 골로 가는 작태를 보이니. 두 번째 악마는 그런대로 머리 쫌 쓰더라고요. 자해공갈을 연출해 파티와 단테를 갈라놓고 슬쩍 처리하려 드니까요.


중간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 법한 막내와 수상쩍은 여관주인의 입가가 교차하는 장면은 일종의 페이크였죠.



 본편은 틈틈이 간결한 연출을 선보이는데, 얹어놓은 모자가 사라진 걸로 파티가 자리를 뜬 걸 보여주는 게 그 한 예죠.


 파티의 심정에 따라 무대의 배경막이 변하는 게 기억에 남는군요. 위기에 빠질 땐 박살난 신전, 구세주가 나타날 땐 꽃밭의 막이 내리는데, 소녀의 위기상황과 원하는 바가 잘 드러나죠. 그러나 이를 악마가 다시금 찢고 튀어나오는 건 그녀의 바램을 부순 상황 그 자체를 은유한 배경이라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 궁금한 게 있는데, 시드나 단테를 비추는 저 스포트라이트는 대체 언놈이 조종하는 걸까요?



과거의 잔재들




 많은 분들이 아시는 대로 본작은 게임을 원작삼아 출발하는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원작의 팬과 애니를 통해 본작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 모두를 배려해야 할 필요가 있죠. 그 때문에 게임 1, 2, 3편에서 나온 요소들을 적극 활용하는데, 이는 게임의 팬들에겐 ‘아, 저게 저렇게 나오네.’ 하는 기분을 맛보게 해주고, 애니를 통해 단테를 처음 접하는 분들께는 이 껄렁한 악마사냥꾼의 본질을 설명해줍니다. 먼저 작품의 시간대를 알려드리자면 시간상 3, 1, 2 편의 순서로 전개되는데, 본작은 아직 2편으로 넘어가기 직전으로 추정됩니다.


 참 바람직한 양아치 포즈로 피자를 주문하다 수화기를 내던지는데요, 3편에서 그의 주식이 피자라는 게 나왔었고 1, 3편에서도 비슷한 포즈로 전화를 받던 게 기억나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동전 뒤집기는 2편에서도 나오는데요, 게임에선 앞면만 고르더니 이번에도 앞면만 고릅니다. 뭐, 나름대로 이유가 있지만요. 근데 저 동전이 2편의 그 동전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애니보다 뒷얘기라 할 2편에서 단테가 동전던지기를 즐기게 된 계기가 소개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악마사냥꾼을 한층 멋지게 만들어준 소품이었거든요.


단테의 대검이 레벨리온이란 게 마음에 걸립니다. 아니, 딴 게 아니라 2편과 3편의 주무장인데 과거편인 3편에선 멀쩡하게 나오고 2편에서도 휘두르던 주제에 1편에선 왜 안 나왔는지... 캡콤의 설정 끼워맞추기로 인한 폐단일까요? 단테가 워낙 변덕이 죽 끓는 성격이라 안 갖고 나왔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요. 레벨리온은 그 이름부터가 참 의미심장한 검이죠. 단테가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품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처지가 그대로 이름-반역자-에 반영된 검이니까요.



 단테가 휘두르던 권총이 바로 ‘에보니’와 ‘아이보리’인데요, 이는 총의 색깔을 보시면 알겠지만 피아노의 흑백건반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3편에서도 락커 흉내를 내던 청년인지라 본편에서도 얼치기 딴따라 행세를 하고 있어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름이죠.

그냥 쌍권총도 아니고 흰 색과 검은 색으로 대비되는지라 일반적인 오우삼 총질보다 멋들어지게 느껴지는데요,

이런 효과의 원조가 바로 ‘헬싱’의 흡혈귀 백작께서 휘두르던 쌍권총이었죠.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가 1988년 발표한 ‘Evony & Ivory’란 곡이 있는데, 피아노의 흑백건반이 조화롭게 음악을 연주하듯 미국의 고질병인 흑백 인종갈등을 청산하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노래입니다. 단테는 정반대로 악마들의 장송곡을 요란하게 연주합니다만.



R 등급, 타인에서 보호자로



 단테같은 인물은 사실 홀로두면 보는 사람에게 그 진면목이 전달되기 힘든 타입입니다.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가 단테를 조종하는지라 이입이 쉽지만, 이를 3자의 관점에서 봐야하는 애니는 좀 다르죠. 그렇기에 파티라는 매개자가 필요해진 거죠. 본편의 전개도 두 사람의 관계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그 키워드로 작용한 게 바로 모친의 추억이었죠.


파티가 사진의 여자를 언급한 순간, 단테의 표정이 슬쩍 우중충해지죠. 사내에게 유쾌하지 않은 추억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여관방에서 대화하는 장면의 구성이 흥미롭더군요. 달빛이 비추는 침대위의 소녀와 그늘속의 소파에 뻗은 사내의 위치와 음영, 시선이 엇갈리는 것은 둘이 다른 세상에 사는 자들이란 걸 보여주지만, 대화중에 카메라가 두 사람의 관점을 바쁘게 갈아타며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던 두 사람의 공감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부터 비롯되는데, 기차에서도 시큰둥하던 남자는 파티가 어머니를 언급하자, 슬쩍 눈을 떴죠.


어머니의 사진과 펜던트는 단테와 파티를 이어주는 공통된 미장센입니다. 그에게도 비슷한 유품과 부모를 그리워하는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파티의 넋두리를 부정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것 때문에 1편에서 큰코다칠 뻔 했지만요.


 두 사람의 단절과 몇 안 되는 공감은 비단 여관에서만 연출되지 않습니다. 여행 내내 단테는 파티에게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이쪽’으로 개입하는 걸 막으려 합니다. 애들이 보기엔 거북스럽다는 나름대로의 배려기도 하지만, 둘은 어디까지나 타인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렇게 신경을 써줘도 파티는 결국 어둠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현실은 일그러지며 붉고 푸른 음영에 잠식되는데, 이를 단테가 막을 때마다 소녀의 세계가 색채를 되찾는 것은 악마들 때문에라도 연결될 수밖에 없는 둘의 처지를 암시하죠.

단테가 막을 내려 작살나는 악마들을 못 보게 해도 시드가 그녀의 배후에 나타나고, 상황이 가까스로 안정된 후에도 흘러넘친 피가 막 아래로 새면서 파티의 발을 적시는 순간들은 그런 현실을 한층 굳혀줍니다.



안타깝게도 내 콘서트는 R-등급이야. ...지금부터는 R-등급이다. 화풀이 삼아 화려하게 라이브를 치러볼까!

본편에선 단테의 입을 빌려 R-등급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이는 파티와 단테의 관계변화에 대한 키워드입니다. R-등급은 우리나라로 치면 19금에 해당하는 등급이지만, R-등급에 해당하는 영화나 콘서트의 경우 보호자 동반시 미성년자도 관람이 가능하다고 하죠. 즉 자동차나 기차, 오페라 극장의 싸움에서 둘은 어디까지나 남일 뿐이었고 단테도 이를 분명히 했던 겁니다.

그렇기에 자동차에선 모자를 눌러 씌우고, 기차에서도 터널에 진입해 어두워진 순간에 공격을 시작했으며, 극장의 막을 내렸던 겁니다.


그러나 나중에 가족관계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즉 파티가 로엘 가문의 가족이 아니란 게 명백해진 순간 단테라는 보호자의 동반 하에 파티는 ‘R-등급’의 피바다를 관람하게 됩니다. 이는 단테가 그녀를 잠정적으로 가족(혹은 동병상련의 닮은 꼴)으로써 받아들이게 됐다는 걸 의미하죠. 



 닫으며




 다 보고 나니 단테의 성격이 지나치게 시니컬한 쪽으로 치우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농담도 곧잘 하는 친구였는데. 3편에선 건들건들, 1편에선 그럭저럭, 2편에선 진지했죠, 역시 3편과 1편의 이런저런 사건에다 트리쉬까지 떠나 콩가루가족사로 인한 스트레스와 노총각히스테리까지 겹쳐 성격이 꼬여갈 때쯤이라 그런가 봅니다. 이런 시점에서 뜻하지 않은 군식구를 얻게 된 셈인데...
 

세파에 찌든 어른이 자신처럼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어린 영혼과 함께 살며 온기를 얻는다...는 루트는 뒷골목의 인생 9단들이라면 한 번쯤 지나야 할 통과의례인가 봅니다. ‘레옹’이나 ‘클루리스’가 그랬고, 장발장 대인이나 몬테크리스토백작도 그랬죠. 특히 프로페셔널 킬러일수록 로리콘(...)의 샛길로 빠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음.



 ETC



단테. 시드가 총을 들이댔을 때, 한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대검에 관통당하고도 걸어댕기는 양반이거든요. 근데, 사무실의 드럼도 그렇고, 레벨리온을 기타 케이스에 집어넣는 것도 그렇고... 3의 딴따라 기질이 부활했나? 펜던트는 어쨌을까요? 집안 꼬락서니보다 딸기 쉐이크부터 신경 쓰는 걸 보고 실소했습니다. 하긴 사무실이 수시로 박살나곤 하니, 뭐. 성우인 모리카와 토시유키 씨는 전설적인 스트리트 파이터 류를 담당하셨죠. 그러고 보니 트리쉬의 성우가 춘리를 맡으신 다나카 여사더군요. 이런. 뭐, 공각기동대의 여왕님으로도 유명한 분이지만요.

모리슨. 성질 꼬인 청년을 쥐락펴락하는 게 보통이 아니죠. 성우는 솔리드 스네이크로 유명하신 오오츠카 대인입니다.

파티. 나중에 트리쉬랑 만나면 볼만하겠군요.

사진을 이상한 쪽으로 오해하고 있으니. 파티의 어머니가 히사카와 아야 씨던데, ‘에어’나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도 그렇고, 요즘 어머니 역으로 이미지가 고정되셨나 보네요.

로엘 가문. 개중 가장 온건해보이던 종자가 악마였다는 것도 황당합니다만, 진짜 파티 로엘을 보면서 기가 막히더군요.

정말 단테 말만 따나 본편의 인간들과 악마들을 통틀어 가장 개차반이었죠. 한순간이나마 악마의 뒤통수를 칠 정도였으니. 단테의 철칙만 아니었으면 벌써 지옥행이었을 겁니다. 성우는 유카나 여사로 최근 ‘코드 기어스’에서 C.C로 맹활약한 분인지라 짧지만 인상적인 캐스팅이었습니다. 그만큼 어울리기도 했고요. 

졸따구 악마 시드. 앞으로 자주 볼 것 같군요. 성우분은 TV판 ‘헬싱’의 안데르센을 담당하셨던 노자와 나치 선생입니다. 한 때 알랑 들롱의 전담성우셨다죠.




 본작의 각본을 담당한 게 바로 ‘데스노트’의 애니판을 맡은 이노우에 토시키죠. 시라카와PD랑 함께 밀레니엄 라이더를 작살낸 일등공신이신지라, 이 양반이 본작을 맡게 됐을 때 먼 산을 돌아 본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근데 잘 생각해보면 ‘쿠가’ 때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애니쪽은 그럭저럭 양호한 물건들도 많은 분이라 불안이 조금은 줄...뻔 했죠. 이 양반 묘하게 다크 히어로나 안티 히어로에 집착하는 데다 막장인간의 개성화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데, 단테의 늘어지는 언동이나 로엘 일가 노는 꼴이 완전 이노우에 스타일이더군요. 가장 온건해보이던 인간이 제일 떡판인 거나, 그보다 멀쩡해보이던 미녀가 인간 중에서 제일 막장인 거나. 게다가 특찰물 때 그랬듯이 짧은 시간동안 참 벼라별 장르를 우겨넣어 바쁘게 이야기를 진행하시는데... 정말 불안해집니다. 작화나 연출은 괜찮지만, 저게 언제까지 유지될지 심려스럽기도 하고요.



좌우당간 정식방송을 기대하며, 이만 줄입니다.



그럼...

by zemonan | 2007/06/17 20:36 | 천기누설 겸 감상 | 트랙백(2)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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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나, 이러고 살아..=ㅁ= at 2007/07/2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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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나, 이러고 살아..=ㅁ= at 2007/07/23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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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akiel at 2007/06/17 20:41
글 잘 봤습니다 ;ㅁ;
데메크는 게임 참 재밌게 하긴 했는데 요즘은 구할데가 없군요. 다시 해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오리지널 스토리로 나간만큼 애니메이션 나름의 단테 성격이 나올듯 합니다. 실제 게임에서도 시리즈마다 성격이 바뀌니..개인적으로는 2가 제일 과묵하고 좋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에는 단테 형[버질]이나 레이디가 나와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ㅇ<-<
Commented by zemonan at 2007/06/17 20:44
Sakiel// 헉 그 새 덧글을 남겨주신 분이 계시다니... 개시손님이라 기쁩니다.
버질은 힘들겠고, 2화예고를 보니 레이디가 나올 듯 싶더군요. 저도 2의 단테를 가장 좋아한답니다.
Commented by 이상한앨리스 at 2007/06/17 23:05
이런 내용이였군요.. 전 사실 이 애니 아는게 하나도 없답니다.- -;;
앞으로 이 애니 기대해 볼 만하군요.
Commented by 솜누 at 2007/07/06 13:41
검색하다가 글 보게 됐어요~ 잘 보고 갑니다 ㅎㅎ
Commented by 알트아이젠 at 2007/08/02 19:25
최근에 6화까지 보게 되었는데...한숨만 나오고 있습니다.

중반까지는 감독 특유의 개그(...)와 게임에서 인상깊었던 락과 호러가 적절하게 섞인듯한 음악이 애니에서 적절히 삽입되는것과 더불어 애니에 새롭게 추가된 오프닝과 엔딩이 상당히 좋았기에 어느정도 참고 봤는데,6화를 기점으로 그러한 참을성도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전투신은 사실상 포기했는데(어떻게된게 트리쉬와 레이디와의 전투신이 지금까지 나온화중 가장 신경을 쓴 것 같더군요) 이제는 그저 '게임에 나왔던 마인모드좀 나오고 에보니 & 아이보리뿐만 아니라 게임에서 자주 썼던 주요화기들좀 등장시켜주었으면하는 조그만한 바람만 남았을뿐입니다.
Commented by zemonan at 2007/08/03 02:27
이상한앨리스님// 기대치는 언제나 적당히 잡아야 하나 봅니다.
솜누님// 잘 보셨다니 기쁩니다.
알트아이젠님// 이대로 가다간 단테가 아니라 또 다른 이노우에식 안티히어로물로만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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