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UTO - (2) Road to Movies 천기누설 겸 감상

작가양반부터 애니 제작진까지 근자에 개봉한 극장판 라스트나루토의 실질적인 완결편이 될 거라 홍보하던데요, 공개된 내용들에서 나루토와 히나타의 러브 스토리만이 아니라 원판의 중요내용과도 깊이 연결된 오오츠츠키 토네리를 강조하던데 날고 기어봐야 외전에 불과했던 이전 극장판들과 달리 라스트는 나루토란 브랜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장난 아닐 듯합니다. 작품 자체가 로드 투 닌자보다 더 나아가려 든달까요.


그렇다고 이전 극장판 애니들을 쩌리 취급하고 싶지 않아요. 제각각 감독들의 특색 있는 연출이 눈에 띄어서 개인적으로 호감가는 작품들도 많거든요. 첫 번째 극장판은 메모리즈’, ‘흑의 계약자’, ‘울프스 레인’, ‘청의 엑소시스트’, ‘일곱개의 대죄등을 연출했던 오카무라 감독이 맡았는데, 원판의 세계관과 달리 현대사회와 굉장히 유사한 세계관, 닌법보단 과학기술에 의존하는 적들이 나오는 이색적인 작품이었죠. 겨울이 배경인 데다 영화란 매체를 소재로 잡기도 해서 더 이질적이었는데, 감독의 취향인지 이전 작품에서도 종종 나왔던 요소들도 눈에 띄었고요. 실사영화스런 연출도 그렇고, 메인 히로인이 꼬맹이 나루토보다 한참 연상인 데다 세파에 지쳐 정신적으로 맛이 가다시피 한 성인여성이었으니.


두 번째 극장판의 경우 양키 판타지 액션스런 요소들과 작명, 오래된 유적이 배경이란 점에서 감독의 전작인 스프리건이 떠오르더군요. 다만 좋아하는 작품인 건그레이브의 츠루 토시유키 감독이 맡은 세 번째 극장판은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과 나루토의 대비 같은 착안점은 괜찮았습니다만 영.


질풍전시점에 들어서선 극장판들이 만화의 연재내용 혹은 TV애니의 방송내용과 연계되는 쪽으로 줄거리를 잡기 시작했죠. ‘인연의 경우는 사제관계에 대해서, ‘더 로스트 타워는 시간여행을 통해 부모와 자식이 이어가야 하는 바를, ‘블러드 프리즌프리즌 브레이크스런 얼개에 마을을 지켜야할 가치의 희생을 논했습니다.

 


이상한 마을의 나루토

 

제 경우 로드 투 닌자를 가장 재밌고도 감명깊게 봤습니다. 원작의 결말에 나올 무한츠쿠요미의 실험판인 한정 츠쿠요미 그리고 당시 나루토가 겪던 고뇌와 심도 깊게 연결된 내용들이 세심하게 구성됐거든요. 작가양반이 직접 감수한 덕을 본 걸까요? 전체적으로 대비 및 수미쌍관연출이 내용과 멋들어지게 맞물렸거든요.


나루토가 자기 이름에 해당하는 소용돌이 어묵이 없고 죽순(멘마)이 나오자 길길이 뛰는 거나 난데없는 붉은 달이야 뻔한 복선이었습니다. 한정 츠쿠요미(月読), 이와 관련된 주월(朱月)의 서를 대놓고 암시한 셈이니까요.


그보단 학부형들이 동기들을 상급닌자로 추천하겠다고 한 직후 나루토가 집에 돌아가면서 가족이 그려진 간판을 보거나 부모 자식이 포함된 가족들이 지나쳐가는 대목에 더 눈이 갔습니다. 딴 세상에서 나루토의 부모님이 상급닌자로 추천해주겠다고 한 직후, 나루토의 귀갓길에는 아까와 달리 가족들이 눈에 띄질 않았죠. 선물가게를 지나친 소년은 아까와 달리 무심코 빨리 걷기 시작하더니 웃으며 뛰어가더군요. 나루토가 진정 원하던 행복과 충족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뜻밖의 선물을 마침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한 고양감을 자연스럽게 묘사한 겁니다.


나루토와 사쿠라의 감정상 대비와 역전도 괄목할 만 했습니다. 제작진은 나루토와 사쿠라의 앨범이나 사진들의 대조를 통해 진실에 대해 조금씩 밑밥을 깔았습니다.


딴 세상 와서 방황하거나 부모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나루토와 달리 사쿠라는 자신의 현재 위치와 자유로운 독신생활을 만끽했었죠.


그런데 사스케한테 받은 꽃이 시들었을 때, 현실을 상기시키듯 귀가하거나 밤마다 들리던 시계소리가 잠시 그치고 적막한 집안에 물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며 처음 겪는 고독감-나루토의 고독감에 대한 공감이 부각됩니다. 이 직후 거리로 나온 사쿠라는 초반의 나루토처럼 가족들과 친구들이 어우러진 일반인들을 둘러보더니, 사스케가 자신에게도 준 장미꽃을 여자들에게 뿌리는 걸 목격하고서야 이곳이 딴 세상이라는 걸 받아들입니다.


사쿠라와 나루토가 딴 세상을 받아들이는 양상이 뒤집힌 직후의 흐름과 정서도 반대되죠. 나루토는 생경한 행복을 받아들이며 집밖에서 집으로 걸어가다가 뛰어갔지만, 사쿠라는 자신의 집에서 바깥거리로 걸어서 나왔다가 비로소 이 세상을 낯설게 여기다가 도망치듯 멘마의 집을 향해 질주합니다. 나루토가 이 세상의 부모님을 뵙고 한탄했던 이유를 이해하고선 소년을 찾아가지만, 그는 이미 소녀의 밥상과 반대되는, 푸짐한 식탁과 화목한 가족잔치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사쿠라는 자기 아버지 즉 원래 세상에선 나루토의 아버지가 입었던 호카게 외투를 나루토에게 보여줘 이 세상이 자신들의 세상이 아니라는 진실을 깨닫게 하고자 외투를 챙기고 만나지만 결국 아무 말도 못합니다. 이 때 코너를 사이에 둔 나루토와 사쿠라가 각각 그늘과 양지, 좌우에 자리 잡은 미장센이 다방면에서 뒤집힌 처지와 엇나가는 심리를 한층 강조하죠. 카메라 또한 사쿠라를 비출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루토를 비출 때는 반대로 움직이며 두 사람의 마음이 맞물리듯 어긋나는 양상을 받쳐줍니다.


카메라가 곧바로 둘을 동시에 잡으며 뒤로 빠지는 순간, 나루토와 사쿠라는 방금 전 카메라의 움직임과 반대방향 즉 각각 더 밝은 길과 어두운 골목을 향해 걸어갑니다. 이들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갈라진 듯 비추지만, 비로소 마음속 대화가 맞물리기 시작합니다. 둘이 헤어진 직후 나루토의 뒤편에 호카게들의 두상이 보이며 관객들에게 현실을 인식시키는데(이 순간에도 인물의 움직임과 가상선은 아까와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아무리 행복으로 넘쳐나도 나루토의 세상이 아니라고 일러주는 듯합니다. 이를 증명하듯 곧바로 적대자가 배경에 폭발을 일으키고요. 이 따사로운 세상을 떠날 때가 됐다는 듯이 말이죠.


나루토는 죽어서 영웅이 된 부모님보단 그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부모님을 원했다고 말했는데 딴 세상의 부모님은 나루토의 바람대로 대의나 공동체보단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보편적이지만 모범적인 양반들이었습니다. 나루토는 이 사실을 접하고 기쁨과 좌절을 동시에 느낍니다.


눈앞의 어른들이 자신을 아무리 사랑해줘도 자신의 진짜 양친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고야 말았거든요.


지라이야가 나루토와 관련해 받은 예언 또한 원판 세상과 대비됩니다. 나루토가 구세주라면 멘마는 재앙의 화신이라 할 수 있었죠. 멘마를 막기 위해 지라이야가 준비한 주월(붉은 달)의 서를 통해 나루토는 자신의 스승에게서 배운 부친의 기술을 기억해내고 마다라 때문에 꺼져가던 정체성과 기운을 돌이키더니 16년 전 사건의 원흉을 아버지처럼 바로 그 기술로 관광태우는 대목이 멋드러졌죠.


제 세상으로 돌아온 나루토는 멀쩡하게 돌아간 달을 접하며, 이번에도 귀갓길에 가족들과 아버지의 큰 바위 얼굴을 애잔하게 둘러봅니다. 아까와 달리 만감어린 미소를 지으면서요.


본작에선 나루토가 귀가하며 인사하는 장면이 총 세 번 나왔습니다. 혼자 사느라 지저분하게 방치된 집에 홀로 돌아왔을 때, 그리고 자신의 소원을 구현한 듯한 멘마네 집에 들어섰을 때, 막판에 이루카가 맞이할 때였죠. 이루카와 인사를 나눌 때 나루토는 이놈의 세상에서 잃으며 산 것도 많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고, 지켜내야만 할 가치가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로드 투 닌자는 결국 나루토가 이 세 번의 귀가를 치르는 사이에 겪은 감정의 변화와 회자정리를 통해 정체성을 되새기면서(어묵, 즉 나루토가 품절됐다는 표에 괜히 표창을 집어던진 게 아니죠) 여느 때처럼 명랑하게 새 하루를 시작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작을 감상한 후 딴 세상의 나루토인 멘마는 그렇다 치고 사쿠라는 대체 어딜 갔던 건지 궁금해지더군요. 질풍전 491로드 투 사쿠라에서 그 해답이 나옵니다. 재밌게도 두 에피소드에서 세상이 뒤바뀐 상징의 대표주자는 바로 4대 호카게의 큰 바위 얼굴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나루토가 부모님을 아쉬워하던 초반부터 슬쩍 나오더니, 나루토와 사쿠라가 황당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 뒤바뀐 4대 호카게의 조각상이 비쳐지더군요. 목욕탕 사건 때도 그랬고요. 나루토와 사쿠라는 이 조각상 밑에서 현재 상황에 대해 곱씹어보는데, 두 사람의 감정상태가 뒤집힌 후에는 사쿠라가 홀로 고민하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그녀가 4대 호카게의 코트를 찾아내기 직전에도 조각상이 나왔었고, 결말에 이르러 나루토가 갈등을 정리하며 질주할 때도 호카게의 조각상이 화면에 잡혔더랬죠.

딴 세상에서 온 사쿠라가 원판의 부모님을 뵙고 도피하듯 뛰어갈 때도 4대 호카게-미나토의 조각상이 나오며 어깨 너머 멀리 호카게들의 조각상이 잡혔죠. 이 세상은 너희 아버지가 4대 호카게였던 그 세상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듯이 말입니다. 그녀는 잠시후 아버지가 걸고 있는 목걸이를 접하자마자 부친의 어깨 너머 호카게 조각상을 보고서 진실을 온전히 돌이키며, 다 기억해냈다고 말한 직후 4대 호카게의 조각상이 다시금 화면 가득 비치더라고요.


딴 세상의 사쿠라는 극장판의 나루토와 사쿠라처럼 딴 세상의 지인들이 내비치는 괴리 때문에 오락가락합니다. 나루토 즉 멘마의 이름을 맞추려다가 잘못 짚는 거 하며, 사스케를 날라리라고 떠올리는 거 하며. 기이하게도 이 에피소드는 나루토와 멘마가 결전을 치르다 추락했던 지라이야와 4대 호카게의 수련장에 사쿠라가 떨어지며 시작하더니 나루토가 지나가던 가족과 큰 바위 얼굴을 보던 곳 즉 원판 사쿠라와 함께 마다라의 한정 츠쿠요미에 걸렸던 놀이터에서 동기들이 장단을 맞춰주는 촌극이 펼쳐집니다.


딴 세상의 사쿠라는 나루토와 입장이 뒤집힌 처지 때문인지 유사한 반응을 취하곤 합니다. 부모님을 뵙고서 경악하고 피하기도 하며, 나루토의 봉인석마냥 아버지의 유품이라 할 펜던트를 걸고 다니기도 하더군요. 사쿠라가 극장판의 사쿠라처럼 부모님 덕에 공짜밥을 얻는 장면에선 원판 나루토처럼 그녀 역시 때때로 영웅으로서 세상을 뜬 부모님이 아니라 자기 곁을 지켜줄 가족에 대한 갈망이 더 사무치곤 했다는 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그래선지 사쿠라는 나루토처럼, 원판 사쿠라처럼 부모님을 힘껏 껴안더니 나루토가 그랬듯 살아계셔서 고맙다며(정신세계에서 만난 쿠시나의 마지막 말과도 비슷했죠) 눈물을 떨굽니다. ‘로드 투 사쿠라란 부제는 나루토가 그랬듯 사쿠라가 자신의 정체성을 돌이켜 가는 동시에 그 핵심이라 할 벚꽃 목걸이의 진실을 찾아내는 이야기를 뜻했던 겁니다.


딴 세상의 사쿠라는 사라지는 순간마저 나루토 일행과 흡사했죠. 이쪽 세상의 자신만 아는 지인에게 진실을 전하지만 상대방은 통 갈피를 못 잡는 거나, 빛을 발하며 사라지는 와중에 어느 세상에서든 자신을 아껴줘서 고맙다고 예를 표하는 것마저요.


사쿠라는 원래 나루토 및 사스케와 대비되는 존재였습니다. 원작에서도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성장한 인물이기에 나루토와 사스케의 삶을 되비추는 존재였던지라 딴 세상에 가서도 나루토와 처지가 반전된 상황에서의 대조되는 감정양상을 부각시키는 데도 더없이 걸맞았죠. TV판 애니에 나온 사쿠라가 원판 나루토와 닮았던 걸 보면 딴 세상의 나루토인 멘마야말로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덕분에 원판 사쿠라처럼 무심코 되바라진 언행을 취하는 철부지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러고 보면 나루토는 어린 시절 그네에 홀로 걸터앉아 다른 아이들과 부모님들을 망연히 쳐다보는 버릇이 있었죠. 딴 세상의 앨범에서 멘마가 어머니의 도움으로 즐겁게 그네 타는 사진을 찾아냈을 때는 가슴이 아렸습니다. 극명하게 반대되는 환경에서 살아온 사쿠라와 나루토의 희망이 실현된 세상이라 그런지 모든 게 뒤집히다시피 한 세상으로 날아가 이제껏 맛보지 못했던 행복에 취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소년 소녀는 이로 인해 돌이키지 못할 과거를 왜 받아들여야 하는지 뼈아프게 깨달았죠. ‘로드 투 닌자는 마다라가 만들 무한 츠쿠요미를 어째서 인정하면 안 되는지 제대로 보여줬습니다(나루토의 쿠라마 모드가 미나토의 코트차림과 유사해진 이유도 덤으로 나옵니다만).


엑스맨 시리즈의 하우스 오브 M’처럼 일종의 꼼수를 이용해 원하던 행복이 충족된 세상은 그 자체로 원래 세상에서 많을 걸 잃고 다치면서 싸워온 여로를, 떠나간 이들을 모독하는 것이기에 인정해선 안 된다는 진리를 반증해주거든요. 사쿠라가 부모님과 싸우고 홧김에 외출했으며, 나루토는 부모님 대신 진급추천을 부탁하려던 이루카한테 혼쭐이 나고선 뛰쳐나갔다가 서로 마주쳐 난장판을 치르게 되는데 이런 대비 연출과 구성만 봐도 은사가 소년에게 어떤 존재로 자리 잡았는지 확실한 셈이죠.


16년 전의 비극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한 고아가 자기보다 더 힘든 처지에 있는 또 다른 고아를 부모 대신 맞이하며 보듬는 결말이 왜 지금껏 살아온 세상을 저버려선 안 되는지 똑똑히 가르쳐줬죠. 그리고 나루토와 사쿠라의 여정은 어떤 세상에서든 변치 않는 게 있다는 것 또한 보여줍니다. 이노의 우정, 히나타의 연심, 부모님의 자식사랑 같은 마음들 말입니다.


로드 투 닌자는 심각하게 보지 않아도 동기들의 뒤집힌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습니다. 은근히 깨알 같거든요. 멘마네 집의 서재에 꽂힌 인해(忍海)’란 책은 나루토 시리즈의 모티브 중 하나인 닌쿠(忍空)’의 오마쥬가 아닐까 싶더군요. ‘로드 투 사쿠라에선 동기들이 모여있을 때 뒤쪽 벽에 극장판의 포스터가 붙어있어서 실소가 나오기도 했고요.


[분량문제로 이번 극장판에 대해선 다음 글에서 얘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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