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킹 배드 – 마왕(痲王)사제의 파행극 천기누설 겸 감상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인 월터 화이트와 제시 핑크맨은 사제지간입니다. 정확히 말해 제시가 못 말리는 불량학생이었던 시절 그나마 신경써주는 척 했던 화학교사가 월터였으며, 이런 과거로 인해 둘이 약팔이 업계에 뛰어드는 일대기의 밑바탕이 마련되죠. 한때 잘나가던 화학자였다가 여차저차 떨려난 월터는 안 그래도 쪼들리는 형편에 말기암 선고마저 받더니, 가족들에게 유산 좀 남겨주겠답시고 졸업후 약팔이로 렙업(?)한 제시를 찾아가 동업을 제안하면서 나란히 피바다 특급을 탑니다.

 

천기누설이 있으니 주의하시길

 


 

 애증어린 듀엣


본작의 첫 번째 감상포인트는 단연코 이 사제콤비의 관계양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시는 온 가족 중에서 그나마 자신에게 집을 물려줄 만큼 친했던 이모가 암투병을 치르다 갔던 적이 있기에 당시의 기억을 되새기며 스승을 받쳐주기도 하고, 월터는 좋은 아빠로서 살아가고자 장애우 아들을 험하게 대한 적이 없었던지라 못난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을 절절히 깨우치며 제자에게 정이 들어가지요.


월터 입장에선 제시는 정말 어쩌다 잘못 낳은 호로자식이나 다름없습니다. 약에 쩐 동네 양아치답게 화학지식을 가르쳐줘도 죽어라 못 알아듣는 것은 물론이고(그래도 서당개 삼년 공식마따나 나름 노력해서 히로뽕 하나는 스승 못잖게 우려내는 재주는 익히더군요. 이로 인해 월터도 그를 파트너로써 인정하며, 여러 변수가 생기기도 하죠.), 일을 시키면 꼭 뭐 하나 망치는 띨빡기질마저 지녔거든요. 덕분에 바람 좀 잠든다 싶으면 없는 말썽마저 만드는 재능을 타고난 제자놈 뒤를 봐주겠다고 막나가는 짓도 여럿 벌여야 했죠. 월터가 2시즌 말미에 제시를 조카에 빗대며 내쳐야하냐 말아야하냐고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노친네(허이구.)와 상담을 하는 대목만 봐도 요 철부지를 제자보다 더 나아간 식구로 여긴다는 사실은 명백했습니다. 잠과 수면제에 취해서 저도 모르게 제시의 여친이 죽는 걸 방관한데 대해 사과하기도 하고, 그와 대판 싸우고 욕보인 후에 친아들에게 위로를 받으면서 울다가 무심결에 제시라고 부르는 대목을 보면 마누라는 물론이고 자식보다도 더 끈끈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죠.


제시도 할 말 많죠. 이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적당히 빌어먹고 사는 하류인생이었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하며 지냈는데 은사 한 번 잘못 만난 바람에 밑도 끝도 없는 나락에 빠지고 말거든요. 부채감과 이 양반 살리겠다는 명분 때문에 원한 관계도 없는 이를 죽이고 나선 돌아버릴 뻔하기도 했고요. 이 청년도 스승에게 미운 정 죽일 정 다 드는 양이 참 알싸하더군요. 제시가 자신한테 면박 줬다가 다시 손을 내민 스승에게 돈 때문이 아니라 댁이, 즉 그나마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줄 알았던 인간이 파트너이자 제자를 껌딱지만도 못하다는 식으로 깔아뭉갠 것이 열받고 서러워서라도 승낙 못하겠다고 절규하는 단락은 정말 처절했답니다. 뭐 얼마 안가 돈이 원수라고 도로 받아들이긴 했지만요.


끊임없이 투닥대며 치고받기까지 하다가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하다가도 재결합하곤 하는 사제커플. 그나마 가식 안 떨고 모든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지인이 서로밖에 없는지라-제시는 마약중독 및 약장사 때문에 가족관계를 비롯한 대인관계가 모조리 절단 났으며, 월터는 이전까지만 해도 살갑게 지내던 가족들마저 속이고 살아야 했거든요-세상 누구보다도 기대고 진솔하게 굴 수 있는 존재는 눈앞의 웬수밖에 없지요. 온갖 땡깡을 다 부리고서도 기어이 뭉치는 이들을 보면 정말 안쓰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합니다.


지겹게도 싸우대다가 서로를 위해 객기마저 부리곤 하는 게 참정나미가 떨어져 꺼지라고 외치는가 싶더니, 다음 날 자신의 파트너가 없으면 죽어도 약 안 만들겠다고 땡깡을 떨어대기까지 하니 원. 제작자인 빈스 길리건은 엑스 파일의 제작자 겸 각본가였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로 멀더와 스컬리보다도 훨씬 재미난 막장콤비인 동시에 끈끈한 커플들이라 봅니다. 5시즌 말미에 들어서 월터는 막장 범죄왕이 다 되다시피 했으며 관계가 있는 대로 틀어졌는데도 제시만은 어찌어찌 챙겨주려 들거나, 이놈한테만은 개시키라 인식되지 않고자 애쓰는 대목이 거식할 지경입죠.


그래선지 월터의 행동을 살짝 왜곡해서 보면 제시와 이래저래 정이 든 거스와 데이빗을 백안시하거나 죽이려든 것도 요놈을 뺏기기 싫어서였다는 식의 2차 창작물이 나올 여지가 있지요. ?

 

 

유혈왕

 

사실 본작에서 가장 재밌고도 매력적인 인물은 소위 인텔리 계열 마피아 보스라 봐도 무방한 구스타보 프링, 통칭 거스더라고요. 다국적 유통기업과도 동업할 만큼 거대한 치킨 체인점을 운영하고, 약팔이들의 가장 큰 적이라 할 DEA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행사에 꼬박꼬박 참석하며 거액을 기부하는 데다 사장이면서도 각 체인점을 돌면서 직접 운영하고 알바생들을 가르치는 모범 사업가. 그리고 항상 타인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면서도 지적인 말투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모범시민. 여자를 밝힌다거나 사치를 과도하게 탐닉하는 우행은 결코 범하지 않으며 사업 확장 및 운영과 체인점 메뉴를 손수 개발할 만큼 요리를 즐기는 것 말곤 취미도 없는 독신귀족. 하지만 이 모든 요소를 이용해 미국과 남미의 마약업계를 호령하는 철옹성을 구축한 대부 중의 대부이기도 하죠.


그의 초기 묘사를 보면 인간이 맞나싶을 만큼 철두철미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마약제조를 포기하려던 월터와 제시를 어르고 달래는 말재간이나 사업상의 불특정요소들을 교묘히 제거하는 과정을 보면 인격체라기보단 인간의 악이 인두겁을 뒤집어쓴, 흡사 환타지물의 대마왕과도 같은 존재란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그러나 4시즌 중반을 넘어서며 거스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그의 존재감은 또 다시 돌변합니다. 월터를 자기 가족들의 원수라 생각하고 끊임없이 죽이려드는 남미 카르텔의 조직원들과 협상할 때야 돈줄 제대로 잡아서 안간힘을 쓰나 싶었죠. 헌데 뒤로 갈수록 거스와 카르텔의 신경전이 도를 넘어서기 시작하더니, 둘 사이의 악연이 밝혀지더군요. 거스는 애송이였던 시절 카르텔의 두목에게 월터처럼 자신의 전공을 살려 독자적으로 뽕을 만들던 단짝을 데리고 가 사업을 제안했다 파트너를 영영 잃고 말았으며, 당시의 교훈을 되새기며 보안과 효율을 극도로 중시하는 범죄기업을 탄생시켰답니다. 지극히 합리적인 인간답게 과거지사는 잊고 짝패의 원수들과도 손을 잡고선 사업을 효율적으로 굴리는데 집중하는 것처럼만 보였죠. 그러나 나중에 월터의 동서이자 담당수사관인 행크가 압수한 증거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해외구좌들이 적힌 액자에 둘도 없는 친구의 사진이 담겨있던 걸 보면. 마음 한구석에선 이들에게 수십배로 갚아줄 날만 벼르며 칼을 갈고 있었던 게죠. 그리고 월터 때문에 생긴 잡음을 계기삼아 기어이 원수들을 찍어내며 숙업을 더없이 시원하게 성취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사업상 가장 큰 장해물을 제거하고 오랜 소원을 실현시킨 거스는 얄궂게도 비교적 작은 골칫거리라 할 월터에게 뒤통수를 맞습니다. 월터가 자신을 자꾸 긁어댄 탓도 있었으나 큰 고민거리를 해치웠기에 마음의 고삐가 슬쩍 느슨해졌는지 그답지 않게 저급한 협박을 노골적으로 가했고, 이로 인해 궁지에 몰린 쥐새끼에게 제대로 되물렸거든요. 복수를 원동력으로 삼은 피카레스크 히어로께서 생존에만 눈을 붉히는 범부에게 역관광당하는 과정 또한 기이하면서도 재밌더라고요.


4시즌 거스의 이야기만 보면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야망과 숙원을 동시에 달성하는가 싶더니 막판에 거꾸러지는 게 고전 피카레스크물의 영웅 같기도 하고요. 거스의 이야기를 하자면 가장 큰 축 즉 자신의 단짝을 손수 죽인 카르텔의 거두 헥터 살라망카를 빼놓을 순 없습니다. 요 노친네는 2시즌 초반에 사제콤비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것부터 시작해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빌포르 영감마냥 인간이 거동을 못해도 얼마나 섬뜩해질 수 있는지 제대로 보여주더군요. 이 둘은 물고 물리는 복수의 끝을 제대로 보여주는 군상들이며, 거스는 헥터에게 죽은 벗의 한을 풀고자 헥터를 비롯한 카르텔이 월터에게 품은 앙심을 이용해 복수놀음 한 번 신명나게 벌였으나, 이로 인해 산송장이나 다름없던 헥터와 월터의 작당보복을 받고 끝에 가서 황당한 최후를 맞이하더라고요. 몸이 절반 가까이 날아가고 나서도 늘 깔끔떨던 평소 버릇대로 넥타이를 고쳐매는 게 기박하면서도 섬뜩했죠.

 

 

변질

 

작중의 월터는 자신의 현재 처지를 규정지은 스스로의 전공 즉 화학에 대해 변화를 일러주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배우인 브라이언 크랜스턴도 인터뷰에서 이 변화야말로 본작의 전반적인 주제라고 봐야한다고 언급했는데 납득이 가더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 만드는 장인에 불과했던지라 암흑가의 거물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받히기 바빴던 월터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 못잖은 악질로 거듭나며, 이 와중에 자신의 가족을 지키겠다며 야수가 된 가장이 자기 가족에게 제일 위험한 짐승이 되는 수순을 척척 밟아갑니다. 자기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던 자들을 제거하고 나니 스스로가 그들을 대체하는 존재가 된 것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경계대상 1호로 변모한 겁니다. 이를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마누라 스카일러는 우습게도 남편이 약팔이 업계에 막 뛰어들었을 때와 유사한 행보와 실수를 선보이며 그를 닮아가더라고요. 그나마 양심이 남아있던 시절의 남편을 말입니다.

월터가 얼마나 간악해지는지 확연하게 보여주는 큰 대목이 두 번 나오죠. 제시를 꾀드기고 자신한테서 돈을 뜯어낸 제자놈 여친이 약물과용으로 죽어가는 걸 일부러 좌시한 거나, 자신과 가족들의 목숨을 위협한 거스를 죽이고자 제시가 사귀던 새여친의 자식을 중독시켜서 그를 제 뜻대로 이용해먹은 작태를 보면 정말 이가 갈리더라고요. 1시즌만 해도 자기 대신 엿먹은 학교 청소부-그것도 학교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병환을 배려주고 도와준 인부가 잡혀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끙끙대던 인간이 어쩌다 이리 된 건지.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가족들이 편히 먹고 살 밑천, 소위 비자금 70여만불을 마련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던 월터의 돈놀음은 갈수록 가관이더라고요. 월터는 2시즌 즈음부터 이래저래 가족들에게 거짓말을 반복하다가 기어이 유리되기 시작하며, 약팔이 노릇에 애착이 생기거나 매진하면서 악명을 즐기는 기미를 내비치기 시작합니다. 월터나 제시나 온갖 아수라장을 겪으면서 목돈이 생기다가도 날려먹기를 반복하지만, 이 와중에도 이들이 다루는 자본의 규모는 소년만화의 악역들 전투력마냥 천정부지로 치솟아갑니다. 결국 본의 아니게 월터의 돈놀음에 끼게 된 아내 스카일러는 모든 진실을 알면서 자신의 남편이야말로 가족이 겪는 재앙의 근원이란 사실에 직면하며, 바깥사람을 이해하려 들다가도 내치고 싶어 환장하죠. 월터의 연명치료가 나름 효과를 봐서 병세가 호전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기뻐하던 스카일러는 5시즌에 이르러선 그가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바람을 품기까지 합니다.


5시즌에서 월터는 마침내 무관의 제왕에 등극하며 확연히 변모합니다. 늘 주변 상황에 휘둘리던 월터는 상황을 직접 주도하는 희열감을 즐기며 지인들을 제 뜻대로 주무르거나 위험요소가 될 인간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짓마저 저지릅니다. 그리고 이런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과 부하들은 공포에 떨며 찍소리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다 하고요. 암흑가의 대부가 되어가는 기저엔 월터 자신이 말했듯 멍청하게 자신의 가능성을 팔아먹었다가 두고두고 후회했던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오기(이 오기는 일찍부터 그의 뒷덜미를 붙들곤 했습니다. 기업에 근무하는 화학자였던 시절 자신을 엿 먹인 옛 연인과 동기가 자신의 병세를 알고 다시 스카웃해 두둑한 연봉과 원할한 의료보험을 제공하겠다며 소위 적선을 베풀었을 때, 단칼에 내쳤거든요.)와 더는 참고 살지 않겠다는 울화가 섞여있었죠. 암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월터는 정말 무골호인이었어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오늘도 내가 참고 넘어가면 그만이라 믿고 근근이 버텨가던 우리시대의 가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암에 걸리고 만사가 부질없어지기 시작하자, 한계선 자체를 머릿속에서 치워나가죠. 가족애로 인해 업보를 시작한 거야 사실이긴 하나, 제시와 온갖 피바다를 겪으며 살아남은 일탈의 희열감은 이 사내로 하여금 처음으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뒤엎고 주도해가는 행위의 마력에 맛들이게끔 몰아갔거든요. 게다가 자신이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냐는 자포자기마저 기본탑재된 마당이니 뭘 더 망설이겠습니까?


4시즌 말미에 거스를 제거한 월터가 5시즌에 이르러 그와 흡사한 언행을 선보이는 장면은 정말 소름끼쳤죠. 거스처럼 정중한 말씨와 잔잔한 미소를 구사하며 찔려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대놓고 드러내는 걸 보세요. 이러니 제 2의 거스로 거듭난 게 자연스러워 보일만도 했죠. 돌이켜보면 거스는 월터의 거울이자 그의 미래를 비추는 그림자라 할 수 있었죠. 암흑가의 인물답잖게 대학에서 학위도 딴 엘리트들이지만, 쌈짓돈 좀 얻자고 체질에 안 맞게 일탈 내지는 객기를 부렸다가 크나큰 상실을 겪고서 변모한 군상들. 그리고 자신에게 해꼬지를 가하던 자들을 쳐내며 그들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음험한 존재로 거듭난 마두들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둘 다 예전에 비해 머리를 짧게 깎아 대머리가 되다시피 한 데다 안경 쓴다는 것마저 닮았네요. 이런 공통점과 함의 때문에 거스란 인물에게 더욱 눈이 갔던 모양입니다.

스승과는 대조적으로 제자 청년은 갈수록 인간적으로 정감 있는 측면이 더 부각된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죠. 마이크와 거스처럼 이 말썽꾸러기를 제거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악당들마저 그와 함께 투닥대거나 생사의 기로를 넘으며 정이 들었는지(물론 월터의 특급뽕 제조법을 아는 유일한 대체인원인 탓도 크지만요) 오히려 월터보다 더 신경을 써주거나 타산적인 측면마저 넘어선 배려를 베풀기도 하거든요. 제시 본인에겐 사실 월터보단 이 양반들하고 일하는 게 이래저래 더 나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할 만큼요.

 

 

닫으며

 

보통 브레이킹 어쩌구는 보통 긍정적인 가치를 뽀개는 족속들 즉 무법자나 파락호같은 인물들을 칭할 때 구사하는 말인데, 이 작품의 제목은 이보다 한 술 더 떠 파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선보입니다. 여타 비슷한 작품들과 달리 본작의 주인공들은 일탈의 단물을 정말 살짝, 그것도 아주 짧게 맛볼 뿐이고 남은 방영기간 내내 수십배는 더 쓴맛 짠맛 보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는지라 섣불리 감정이입했다간 카타르시르를 비롯한 대리만족은커녕 스트레스만 늘겠더라고요. 더욱이 월터와 제시는 걸핏하면 벌어먹은 자본을 뜻밖의 돌발사태로 인해 시즌 말미에 다 날려먹는 정기코스에서 절대 벗어나질 못하더라고요. 대체 무슨 역마살이 낀 건지.

각본과 연출의 구조는 찐득하면서도 감탄스런 구석이 넘쳐납니다. 때때로 시즌 도입부 혹은 각 에피소드 도입부에 정체불명의 복선 시퀀스를 깔곤 하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말미에 이르러 이거였구나!’하고 만드는 연출력이 장난 아니죠. 때로는 허망한 느낌을, 때로는 카타르시르를 안겨주면서요.


그렇다고 막장 드라마 특유의 황당한 인과관계가 안 나오는 건 또 아니예요. 제시가 본의 아니게 자기 여친을 도로 약쟁이로 만들어 죽도록 조장한 결과가 끔찍한 항공기참사를 일으킨 2시즌의 결말이야 기박한 나비효과를 묘사한 거려니 하겠지만, 이 청년이 중독자 재활모임에서 사귄 여친의 동생이 자기 똘만이를 죽인 진범이란 걸 우연히알게 되면서 발생한 사건들은 좀.

그리고 이놈의 작품은 현실의 그늘 또한 매섭게 찌르곤 합니다. 최근 미국의 매체에서 곧잘 나오는 소위 중산층들의 생계형 범죄를 적나라하게 꼬집으며, 2000년대 들어서 모기지 사태를 비롯한 금융파국이 여럿 발생하고 군사적 분규가 이어져 총체적으로 밀려드는 경제적 압박과 말기암환자의 연명조치마저도 쉽지 않을 만큼 모진 의료보험에 대한 테제가 본작에서도 여지없이 나오거든요. 월터가 제 목숨 몇 년 늘리고자 받는 치료와 동서가 총 맞고 나서 불구자 안 되려 받는 물리치료액수를 보면 입이 벌어질 지경이거든요. 저쯤 되면 정말 강도짓이라고 하고 싶어질 만도 하겠더라니까요.

나아가 막장으로 굴러가는 미국 마약판의 현황도 배어있죠.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전통적인 약물이 아니라 화학합성물에 의존하는 미대륙의 마약 조직이나 2시즌 7화에서 나온 멕시코 민중가요라 할 꼬리도 그룹의 노래 그리고 마약밀수꾼들의 성인이라 불리는 헤수스 말베르데의 조각상이 DEA 사무실에 있는 모습은 현재 마약장사 때문에 생지옥과도 같이 변모한지 오래인 멕시코의 실상을 엿보게 해줍니다. 꼬리도는 멕시코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를 전파하거나 들을 때 접하는 대표적인 매체로 꼽히곤 하며, 오사마 빈 라덴과 미국의 더러운 관계 및 이로 인한 온갖 참상을 뉴스보다 더 효과적으로 민중에게 전달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이 민중가요가 멕시코의 비참한 현실로 인해 마약업자들의 이야기마저 영웅담처럼 노래하기에 이른 배경은 막장으로 치닫는 삶속에서 생계 때문에 범죄에 뛰어들었다가 마약왕으로 변모해가는 한 사내 그리고 그를 통해 대변하는 21세기 미국인들의 실상과도 상통하는 측면이 있어요. 국가의 잘못된 지침과 온갖 사회적 부침 때문에 망가져가는 미국 중산층의 생활상 그리고 이로 인해 빚어진 온갖 비극들은 미국인들이 그토록 업수이 여기고 마약에 찌든 야만인들이라 멸시한 이웃나라 사람들의 삶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는 비꼬기인 셈이죠.


저는 이른바 보통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섬찟한 족속이란 걸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이 본작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작중에서 가장 악랄한 짓거리를 저지르거나 계기를 제공하는 작자들은 돌아이 살인마나 흉악범들이 아니라 월터나 애딸린 커리어 우먼 리디아 같이 자기 자신과 주변사람들의 안위를 지키겠다는 명목 하에 선을 넘는 부류들 즉 비교적 범부라 할 수 있는 이들이라는 점도 이를 받쳐주고요. 무엇보다도 소시민이었던 월터가 만악의 근원으로 변모해가는 과정만 봐도 기가 찰 지경이더라고요. 시한부 인생과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명분을 가장 큰 핑계거리로 내세우며 아끼던 주변인물들의 삶마저 뒤틀어버리면서도 온갖 행패를 정당화시키는 거 보세요. 강풀 선생은 이웃사람에서 연쇄살인마가 괜히 탄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죄악을 한 번 두 번 정당화시켜 나가다보면 이런 말종들로 거듭난다고 역설했었고.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서도 작중의 인물이 너는 스스로가 악인 줄 모르기에 최악이다.’라고 말했죠. 겁쟁이 범부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인 동시에 제일 무서운 부류들이라는 건 동서고금을 초월한 진리인가 봅니다.

 

 

그리고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아낀다는 배우 대니 트레호가 저런 역으로 깜짝출연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본작에서 달리 주목했던 인물은 월터의 동서이자 가장 큰 난관으로 변모해가는 행크였습니다. 참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에요. 시즌 초반만 해도 쉴드에나 나올 법한 왕재수 터프캅인가 했습니다. 압수품인 쿠바산 시가를 적당히 삥땅치기도 하고, 스스로를 진짜 싸나이라 과시하고자 주변 사람들한테 지분대는 거 하며. 공교롭게도 나름 유능한 DEA요원답게 자기 동서의 목줄을 무심결에 건드리곤 하다가 놓치곤 하더군요. 월터가 뒤로 갈수록 정나미가 떨어지는 부류로 변모하며 아내마저 덩달아 타락시키는 데 반해 행크는 이야기가 거듭되면서 거칠고 투박하지만 진실한 인간미를 종종 드러내더라고요. 비록 초반에야 진짜 사나이 증후군과 소심한 내면의 괴리 때문에 정신적 육체적 공항을 겪으면서도 죽어라 허세를 떨거나 아내 또한 툭하면 도벽이 도져 망신살이 뻗치지만, 조카를 비롯한 가족들에게 나름 선을 지키고 마누라와 투닥대고 투덜대면서도 기댈 때는 기댈 줄도 알더라고요. 솔직히 가까이 알고 지내면 이래저래 불편한 인간이겠지만, 형사기질과 나름의 사명감 및 가족애만 따질 경우 백날 가족을 위한다는 핑계 하에 남의 가족들을 망쳐댈 약물을 디립다 쏟아내는 누구씨에 비하면 세상에 꼭 있어야 할 부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동서 때문에 날벼락 맞아 자리에 누운 후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끈기 있고 치밀하게 수사해가는 능력도 키워가더군요. 문제는 자기 가족을 아끼는 이 형사 양반이 5시즌 말미에 들어 마침내 형 아우 하고 지내던 인간의 본색을 짚어내고 말면서 진짜배기 파국이 밀어닥쳤다는 겁니다. 행크의 옛 상관인 부서장은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친하게 알고 지냈던 거스의 정체를 알고서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는 심경을 토로했죠. 거스가 월터의 변모와 운명을 암시하는 그림자였다면 부서장의 팔자는 행크의 미래에 대한 복선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으휴.

 

좌우간 본작의 주역들이신 월터와 제시의 가장 큰 공통점은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공식의 진정한 구현자들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 인간들은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직접 피를 보거나 피바다의 도화선을 제공하는 사고를 무던히도 치며,직접 죽인 인간들과 간접적으로 죽어나가게 만든 인간들의 숫자를 세면 후덜덜합니다. 본작도 이젠 최종화만 남았습니다. 기괴하게 배합된 원소들처럼 온갖 시너지를 선보였던 이 약팔이 물귀신 콤비가 마지막으로 어떤 화학현상을 선보일지 기대하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P.S. 제시가 머리 민 월터를 보며 렉스 루터 같다고 말하던데, 참 얄궂죠. 배우인 크랜스턴은 맨 오브 스틸의 후속작에서 렉스 루터 역을 맡을 후보 중 한명으로 강력하게 추천받고 있거든요. .


 


덧글

  • 순수한 늑대개 2013/09/27 11:18 # 답글

    ㅋㅋ 마지막에 만화로 그려진 그림 너무 귀엽게 표현한거 아닌가용?? ㅋ
    이 드라마 다운받아 놓고 야금야금 정말 잼나게 보고 있는 중인데... 확실히 초반에는 월터랑 제시 볼때마다 진짜 짠~~ 하다가 중반 이후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이전에 그 짠한 사람들 맞나?? 싶더라구요..
  • zemonan 2013/09/27 21:35 #

    초창기의 저 콤비는 저 그림에 걸맞는 구석도 넘쳐났죠. 지금이야 뭐... 한숨만 나옵니다.
  • 아르밍 2013/09/27 11:44 # 답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
    4시즌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보긴 했는데 이게 참 은근히 무겁고 부담스러운 드라마라 5시즌은 손을 안 대고 있었거든요. 그래도 봐야겠네요...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평범한 죄들이 그 어떤 범죄자의 죄보다 세상을 어둡게 만든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진리죠...
  • zemonan 2013/09/27 21:37 #

    '와이어'처럼 보고나면 정말 한없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죠. 더욱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호흡이 느린 편이라서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고요.
    '제브라맨'에서 한 노친네가 특별히 나쁠 것도 좋을 것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이 세상을 잿빛으로 물들였다고 한탄하더군요. 나이가 들수록 뼈저리게 공감할 때가 많습니다.
  • imjohnny 2013/09/27 13:30 # 답글

    아... 정말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 zemonan 2013/09/27 21:37 #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 신화만세 2013/09/28 07:22 # 삭제 답글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 여러 호평을 받는 드라마더군요. 그래서 시즌 마직막 방연 전에 전 시즌을 어느 방송국에서 틀어주더군요. 현재 미국에 있는 저는 별 관심없어서 그냥 MP3 들으면서 운동하지만요. 이 드라마의 초점은 저 사제관계라 할수있겠군요.
  • zemonan 2013/09/28 15:00 #

    5시즌 중간에 휴방한 적도 있었기에 재방송을 해줄만도 하겠더라고요. 삽입곡이나 배경음도 나름 괜찮던데 말입니다.
    마지막 화에 이르기까지 제시와 월터가 쌓아온 악연을 보면 같이 죽든가 같이 살든가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음.
  • Merkyzedek 2013/09/30 12:33 # 답글

    여러가지 요인으로 사람들이 수렁에 빠져드는 것이 참 안타깝군요.
  • zemonan 2013/09/30 22:02 #

    얼치기 약팔이 선생께선 막화에 간신히 자신의 내리막길에 종지부를 찍었답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수습은 다 하는 게 알싸하더군요.
    갓차맨 크라우즈는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에 얽힌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히어로물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타파하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감독께선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가장 큰 축 중 하나도 대차게 짚어서 재밌었죠. SNS의 양면성도 적절히 살려냈고요. 특히 결말부의 역공에 대한 재반격 방식은 온라인 게임의 긍정적인 현실적용에 대해 연구하는 분들도 많이 논하던 이론이라서 눈에 밟히더군요.
    네트워크의 발달을 통한 민의의 보다 신속하고도 직접적인 반영은 지금도 진행 및 변천 중이긴 합니다만, X처럼 완벽하게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중개프로그램과 인간이 맞나 싶을 만큼 기상천외한 사고방식을 지닌 아가씨 같은 군상이 없으면 성립되긴 힘들겠죠. 좌우간 1기로 매듭짓기엔 아쉬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2013/09/30 12: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spawn 2013/10/13 00:37 # 삭제 답글

    아직 2시즌 6화까지만 봤는데 저 사제관계가 왠지 저는 와타모테의 주인공이 연상케 하더군요. 왠지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껴지는 건 저 뿐이려나?
  • zemonan 2013/10/22 10:45 #

    소심하면서도 자괴감 넘치고 남 탓하기 좋아하지만, 은근히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는 점이 비슷하기도 해요.
  • 펀치드렁크 2014/01/14 20:07 # 삭제 답글

    여운이 상당히 긴 작품이네요... 시사하는 바도 크고 아마 이 시리즈에 관해서 누군가와 한 시간 이상 얘기 할 수 있을것 같아요.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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