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ON MAN 3 - 아이언맨 라이즈!! 천기누설 겸 감상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아이언맨 씨리즈의 진정한 간지폭풍이라 할 아이언맨 군단 러시를 실사영화로 보게 되다니. 게다가 결과물이 전작들보다 나은 정도면 감지덕지라 생각했는데, ‘어벤져스’ 못잖게 재밌어서 놀랄 노자였죠.


천기누설에 주의하세요.


‘아이언맨’ 3편을 보고서 뜻밖이었던 게 미국이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와 고질병에 대해서 은근히 깐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다양한 나라의 이민자들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융합시키면서 성장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요상한 편견에 사로잡히는 맹점도 지닌 나라죠. 본작에서 만다린은 수많은 문화가 어지럽게 뒤섞인 차림새와 언행을 과시하면서 미국의 이런 편견 그리고 이로 말미암은 독선에 대해서 대차게 깝니다. 미국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흔해빠진 행운과자는 실제 중국과 상관없는 물건이며, 미국에서 제 멋대로 여러 문화를 짬뽕해 만들었다는 식으로요. 게다가 만다린이 해적방송을 때릴 때마다 아랍계 테러범이라고 시사하는 듯한 복장과 합성영상을 과시하자, 미국 정부에선 뻑하면 아이언 패트리어트를 아랍권에 파견합니다. 조종사인 짐조차 아랍계 여인네들만 가득했던 공장을 잘못 덮치고선 ‘여러분을 해방시키러 온 겁니다, 억압당하고 있었다면요.’라는 말이나 힘없이 내뱉고요. 그리고 만다린이 거대 정유 회사의 사장을 처치할 때, 이 사장이 대통령이랑 연줄이 있어서 바다에 기름을 왕창 유출하는 대형사고를 저지르고도 멀쩡하게 잘 살았다는 대목도 나오는데 미국이 아직껏 치르고 있는 전쟁의 발단과 수렁 그리고 기름 때문에 온갖 난장을 까는 미국의 세태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깐 셈이죠. 물론 본작의 끝판왕이야 그저 연막전술을 겸한 대의명분을 내세운 것에 불과했지만요. 나중에는 대통령이 성조기가 그려진 아이언 패트리트 즉 자신이 그토록 신임하던 갑옷에 뒤통수를 맞고 잡혀와 이 갑옷을 입은 채로 기름에 튀겨 죽이는 팽형을 당할 지경에마저 이르고요.


본편의 메인 빌런이 만다린인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만다린은 원작에선 아이언맨 최강의 숙적인데, 공학기술을 구사하는 토니와 달리 외계에서 날아온 신비한(…헹.) 에너지의 결정체로 라이벌을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작자였죠. 시대가 흐르면서 토니 못잖은 기업가 겸 병기산업 기술자로서 두뇌전을 펼치는 맞수로 변모하기도 했으나, 초창기에 그는 생김새, 사고방식, 능력 할 것 없이 동양에 대해 양키들이 품고 있는 편견의 집합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문화적 맹점을 지르고 이용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 특유의 편견을 찌르기 위한 존재로써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한 본작의 제작진들이 그동안 묵혀뒀던 이 양반을 마침내 꺼내든 것 같습니다. 희한하게도 원작의 만다린은 초월적인 능력을 통해 맨몸으로도 아이언맨을 아작내곤 하는 굇수인데, 본작에서도 킬리언이 제 몸뚱이 하나만 갖고 토니를 몰아치며 자신이야말로 진짜 만다린이라고 천명하니 황당하더군요.


나아가 킬리언이 동원하는 부하들은 죄다 아프간 및 이라크 참전용사 내지는 귀환병이란 점도 의미심장하죠. 이놈의 전쟁은 갈수록 21세기판 베트남전이 돼가고 있으며, 미국을 조금씩 침체시키는 요인으로 꼽힙니다. 전쟁이 당초 예상보다 오래도록 이어지면서 경제도 내려앉고 테러위협도 늘어갔으며, 병사들을 지나치게 충원하다 보니 불량병사들이 늘거나 PMC의 비중이 커지기도 했고요. 현대판 부비트랩인 IDE의 위력이 갈수록 강력해지면서 사상자가 늘어가는데 반해, 의학기술이 발전한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장애우가 된 병사들도 자꾸만 늘고 있어요. 더욱이 귀환병들의 복리 및 재활이 순조롭게 안 풀린 나머지, 이들이 갱단을 형성하거나 범죄에 연루되는 사건들도 증가했답니다. 본작의 익스트리미스 피험자들도 망가진 몸뚱이와 정신을 돌이키겠다고 자원한 자들이 대부분이며, 이들 중 몇 몇이 오히려 지하드 테러범들마냥 자폭 테러를 저지르게끔 내몰리는 게 얄궂죠.

현재 미국을 갉아먹는 전쟁의 발단과 속사정 그리고 후유증에 대해 다방면에서 까는 듯한 느낌마저 들지만, 뭐 그래도 나름대로 선은 지킵니다. 너무 심각하게 꾸려나가다 ‘다크나이트’처럼 관객들을 우울하게 몰아가면 곤란하니까요.

 

 

힘과 짝패

 

마블의 가장 오래된 동시에 강력한 주제. 힘에 대한 주제가 본작의 내용구조 역시 탄탄하게 받쳐줍니다. 그리고 이 힘을 두 맞수가 어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뤄가느냐가 극명하게 대비되죠.


본작에서 토니는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어봤지는데도 불구하고 ‘어벤져스’에서 기어이 자신의 상식을 훌쩍 초월한 존재들 그리고 전투를 접한 바람에 정서불안을 앓기 시작합니다. 언제 또 그토록 위험한 적들이 쳐들어올지, 자신이 끝까지 버텨내기는 할 수 있을지. 그리고 페퍼를 지켜낼 수 있을까. 그렇기에 몇 안 되는 친구이자 측근이었던 호건이 수상쩍은 인물을 조사하다 피떡이 된 후, 정줄 놓고 만다린을 공개적으로 도발하는 만용마저 부립니다.

또한 뉴욕 사건은 토니만 변화시킨 게 아니었습니다. 킬리언은 토니에 대한 복수심도 있긴 했으나, 하늘에서 천둥망치 휘두르는 작자가 내려온 걸 보고 충격을 받은 후부턴 자신의 힘을 확장하고 익스트리미스를 주입받은 신인류를 늘려야겠다는 데 매진하고자 진도를 한층 빨리 나갔다는 요지의 말을 하더군요. 그도 토니처럼 뉴욕에서 벌어진 범우주적 난장판에 충격을 받아 가일층 미쳐 돌아버렸다고도 볼 수 있겠죠.


킬리언과 토니의 힘이 꼬여 들어간 또 다른 대목이 뭐냐면 킬리언이 속한 AIM에서 마각을 드러내기 전에 워머신을 아이언 패트리트로 업그레이드해줬고, 이를 이용해 온갖 분탕질을 친다는 겁니다. 덕분에 순진한 군바리 짐은 개고생하죠. 이 아이언 패트리트는 원작 만화에서 온갖 행패를 부린 노먼 오스본이 토니한테서 강탈한 갑옷의 명칭과 디자인을 따온 물건인데요, 본의 아니게 전직 그린 고블린인 노만만큼이나 큰 해악을 저지르고 맙니다.


본작의 끝판왕인 킬리언이 토니한테 얼마나 집착하며 호승심이 강했는지 증명하는 요소 중 하나는 마야 한센입니다. 토니는 마야 한센의 연구를 잠깐 접해보는 척하고 그녀와 하룻밤 즐기자마자 자리를 떴죠. 그러나 킬리언은 토니에게 버림받은 마야한테 접근한 후, 그녀의 연구를 이용해 자기만의 권좌를 다져갑니다. 개인적으로 뜻밖이었던 게 토니가 원작과 달리 익스트리미스를 안 쓴다는 겁니다. 원작처럼 자신의 뇌파로 직접 디지털 기기들을 해킹하거나 조종하지 않고, 대신 자기 몸에 극소형 기계를 삽입해 말초신경신호로 통제하며 인공지능 집사인 쟈비스의 보조를 받아 원작 못잖은 원격제어시스템을 확립했더군요. 이는 토니와 킬리언의 대립구도를 한층 강화하기 위한 변경점이라 봐야 합니다. 힘과 자신을 분리해 똑바로 직시하고자 하는 자와 힘 자체와 하나 되어 심취된 나머지 막 나가는 자의 차이 말입니다.


본작의 미덕 중 하나는 토니와 킬리언의 뒤틀린 앙숙관계와 대립구도가 다방면에서 피로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입부에서 토니가 아이언맨이 되기 전 즉 망나니처럼 살던 시절을 새삼 돌이켜보며 그의 무책임한 행보가 종당에 이르러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쳤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더군요. 자신을 동경하고 협조를 구하던 남녀를 함부로 대하고 내치면서 이들이 수많은 인명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데 일조하기도 했으니까요.

토니와 킬리언은 각자 큰 좌절을 겪고 자신의 빛과 그늘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과 결과는 확연히 달랐죠. 토니는 수많은 이들에게 해꼬지하던 삶을 청산하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길로 나아가고자 노력했지만, 킬리언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는 자기 자신의 비참한 속성을 받아들이며 그늘속의 배후조종자로써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들의 앙숙 겸 짝패 구조는 둘의 연구와 힘 그리고 마지막 대결에서도 확연히 드러나요. 두 사람 다 모종의 이유로 인해 자신이 연구하던 ‘힘’을 자기 몸에 심어 힘과 하나되야 했던 자들이며, 이를 통해 얻은 힘을 온몸으로 발산하며 초인의 경지에 다가갔죠. 그러나 토니가 살기 위해 아크 리액터를 심장부근에만 박아놓고선 힘의 바탕이라 할 갑옷과 자신을 분리시켰다가 필요할 때만 뒤집어쓰는데 반해, 킬리언은 순전히 자신의 야심 때문에 익스트리미스를 제 몸에 주입해서 완전히 변질되고 말죠. 그리하여 킬리언은 늘 힘과 하나된 상태로 나돌아 다니며, 이로 인해 힘에 홀린 나머지 지나치게 막나갑니다. 또한 그들이 한 여인 즉 페퍼를 바라보는 관점이야말로 인간관의 차이를 증명합니다. 그녀가 죽은 줄 알았을 때, 킬리언은 ‘완벽한 여자가 될 수 있었는데.’라고 뇌까리며, 토니는 ‘원래부터 완벽한 여자였어.’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이 두 사내가 페퍼를 그리고 자신을 비롯한 인간들을 바라보는 내면을 완벽하게 압축하죠.


막판의 혈투는 실로 장절했습니다. 피와 기름이 튀고 살과 금속쪼가리가 흩어지는 가운데 두 사내가 각각 기계공학과 생물학의 극점에 선 능력을 이용해 말 그대로 끝내주게 치고받더군요. 킬리언은 자신을 끊임없이 강화시키고 변화시키며, 다칠 때마다 재생시킵니다. 토니는 수많은 갑옷을 조종하며 킬리언이 이를 박살날 때마다 절묘한 조종실력을 발휘해 갈아입으면서 싸움을 이어가고요. 정말 압권이었죠.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선 익스트리미스를 주입받은 전직군인들과 무인 갑옷들이 피터지게 혹은 기름 터지게 싸워댑니다. 각자 토니와 킬리언의 자식들이자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들의 개싸움도 나름 볼만했어요. 토니의 갑옷들은 각자 이런 저런 용도에 맞춰 만들어졌기에 훨씬 다채로운 힘을 구사하긴 했지만요.

토니가 기어이 킬리언에게 결정타를 가할 때 자신의 힘 그 자체라 할 갑옷을 강제로 입혀 자폭시키는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처럼 힘에 심취했던 적에게 자기 힘의 근간이라 할 병기와 융합시켜 터뜨린 순간은 막판에 나온 불꽃놀이와도 이어져 드라마틱한 상징성과 은유를 내비쳤죠.

 


불꽃놀이. 본작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는 불꽃놀이입니다. 밀레니엄 버그다 뭐다 했던 1999년 12월 31일. 새시대가 다가오던 그 날 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잔치를 벌이며 불꽃놀이를 벌였죠. 그리고 그 이 날 토니가 내친 두 인물 중 마야 한센의 집에선 익스트리미스를 주사한 식물이 터지며 불꽃을 피웠고, 킬리언은 외로이 불꽃놀이를 보며 자살을 결심했다가 울화가 복받쳐 거듭났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몇 년간 인간을 이용해 끔찍한 불꽃놀이를 벌입니다. 익스트리미스의 부작용을 이용해 소외된 참전군인들 혹은 귀환병들을 인간백정이나 봄버맨으로 바꿔 사방에 자폭테러를 감행했거든요. 그리고 토니. 토니 역시 본편에서 수많은 아이언맨 갑옷을 이용해 싸우다 급하면 자폭시키는 식의 불꽃놀이를 종종 벌이더니 막판에 페퍼를 보며 깨달음을 얻자마자 죄다 터뜨려 연인의 마음을 사로잡고도 남을 불꽃잔치를 벌입니다. 거대한 성탄절 나무를 배경으로 아이언맨 갑옷들이 터져나가는 돈ZI랄이라니. 정말 장대하고도 억소리나는 불꽃놀이였죠. 이 불꽃놀이란 소재를 갖고 두 사내의 깨달음과 내면을 달리 받쳐주는 양이 알싸했죠.

 

 

Remember, remember Tony Stark… and Iron man!

 

본편이 끝나고서 1편부터 3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스탭롤과 함께 스크린위에 비치자, 감회가 새롭더군요. 1편에서 토니의 삶을 바꿔주다시피 했던 인센 박사가 3편 초반에 다시 나옵니다. 인센 박사는 이전에 학회에서 토니를 만나본 적이 있지만, 토니 자신이 기억 못한다고 슬쩍 핀잔을 준 적이 있었는데 이게 드디어 밝혀진 셈입니다. 이 장면이 왜 중요하냐면 당시 인센 박사가 소개해준 중국인 의사양반이 영화 막판에 토니의 가슴에 박힌 아크 리액터와 파편을 뽑아내는 수술을 집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토니가 자기 자신의 삶을 본편에서 또 다시 변화시켰다는 걸 이중의 의미로 강조하는 대목이었죠.


토니는 본편에서 1편과 유사하면서도 더 나아간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힘 즉 아이언맨 갑옷과의 관계였죠.


‘어벤져스’에서 겪은 범우주적 난장판을 비롯해 이런저런 격변을 치르면서 심리적인 압박에 은근히 시달리던 토니는 자신이 갑옷 없으면 허당이란 강박관념(캡틴한테 그토록 큰소리쳐놓고서 말입니다!!)에 시달려 갑옷과 자신의 일체화를 한층 다지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고(신속원격합체 시스템 및 원격제어시스템), 이로 인해 갑옷을 무의식중에 조종해 페퍼를 놀래키기도 하죠. 질리다시피 한 페퍼가 침대를 떠나고 흉하게 분해된 갑옷만 토니의 곁을 지키는 장면은 참 심박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토니가 페퍼한테 삐졌다는 걸 드러내고자 일하면서 갑옷만 조종해 그녀를 능청스럽게 맞이하는 대목은 꼭 ‘왓치맨’의 닥터 맨하탄같더군요.


게다가 토니는 나중에 전원이 나간 갑옷을 끌고서 눈밭을 힘겹게 나아가기도 하는데…. 꼭 떼려야 떼지 못하는 반쪽을 끌고 가는 느낌이 들죠. 한술 더 떠 추운 나머지 미대륙 원주민들의 판초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과거의 자신과 최강의 병기를 동시에 관에 담아둔 채 끌고 다니던 쟝고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나 기박하게도 이 갑옷은 두 번이나 페퍼와 합체하더니 연달아 토니를 구해줍니다. 물론 처음엔 토니가 페퍼를 구해주려고 입혔던 거였지만요. 본작에서 토니는 갑옷을 온전히 활용 못해 주변인들의 도움과 조언을 통해서 난관을 타파하곤 하는데요, 이는 토니가 진정 자신의 본질을 받쳐주는 존재가 갑옷이 아니라 자신이 아끼는 이들이란 진실을 받쳐주죠. 특히 페퍼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더군요. 그녀는 얄궂게도 자신을 사랑하고 집착하는 사내들로 인해 그들의 소산을 받아들여 유사한 존재로 거듭나더니, 사내들의 힘마저 본의 아니게 구사하고 맙니다. 킬리언이 그녀를 자신과 흡사한 존재로 만들고 토니한테 승리한 전리품으로써 소유하고자 익스트리미스를 주입해 변질시켰다면, 토니는 그녀를 순수하게 지키고자 갑옷을 입혔죠.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의 차이는 페퍼가 말미에 익스트리미스와 갑옷의 힘을 동시에 이용해 토니도 끝내 못 죽였던 킬리언에게 확인사살을 가하는 시퀀스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때 페퍼의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당신이 왜 갑옷에 그토록 집착하고 포기 못하는지 알았다고 말하는데, 킬리언과 토니처럼 그녀 역시 잠시나마 초월적인 힘이 얼마나 매혹적이며 인간의 본성마저 어찌 뒤틀 수 있는지 체험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토니는 마침내 인정하죠. 자신이 힘에 얼마나 사로잡혀있었는지, 그리고 이런 집착을 떠나보낼 줄도 알아야만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다는 진리를요. 토니는 킬리언을 쓰러뜨리고자 자신의 힘을 포기했듯 이제껏 공들여 만든 갑옷들 즉 과도한 힘과 집착의 결정체를 손수 파괴합니다. 그리고 갑옷은 자신의 본질이나 궁극적인 도달점이 아니라, 새로이 거듭나기 위한 누에고치였다는 명대사마저 날려줍니다. 참 진부한 소리지만, 워낙 적절한 타이밍에 나온 소리라 심금을 울리더군요.

1편에서 토니는 막판에 자신이 아이언맨이라 선언하며 끝냈듯 3편에서도 자신이 아이언맨이라 선언하며 끝냅니다. 그러나 이 선언에 담긴 마음가짐은 완연히 달랐죠. 1편에선 막 비상하는 신진 영웅답게 오기와 호승심에 차서 진실을 대놓고 밝히며 으스대는 데 가까웠지만, 본편에선 자신이 아이언맨으로 존재하는 진정한 이유를 깨달았다는 듯이 되뇌니까요.

 

 

그밖에…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1편부터 나온 텐 링즈와의 관련이 분명하게 안 드러난 것은 좀 유감스럽더군요. 원판 만다린의 반지에서 1편의 테러집단 명칭을 따고, 각 편의 빌런들이 이 반지들을 낀 걸 통해 이래저래 관련됐다는 암시를 흘리더니 이게 뭐래요…. 이 악당들을 배후조종한 대마왕이 킬리언이셨다? 참 일찍부터 토니를 해꼬지해왔던 셈이구만요.


아, 그리고 가이 피어스가 간만에 참 멋지구리한 악역을 연기하는 걸 봐서 기뻤습니다. 그래도 벤 킹슬리가 연기한 만다린만 하겠습니까만은. 벤 킹슬리는 외모가 무국적스런 느낌이 들어선지 ‘간디’를 비롯해 다양한 비서구권 인물들도 연기하셨다죠. 어린 시절 감명깊게 본 영화에서 실존인물인 주인공을 연기한 대배우께서 테러대왕으로 나온 것만 해도 기가 찼는데, 중반부에 드러난 진실을 접한 순간 뻥지고 말았습니다. 컥… 굿잡!!


게다가 나름 야심작인 42번째 갑옷이 은근히 역대 갑옷 중 가낭 험한 수난사를 겪는 걸 보면 참 웃기면서도 씁쓸하더라고요. 본작의 가장 큰 토대라 할 원작의 익스트리미스 사건은 토니로 하여금 아이언맨 갑옷과 자기 자신의 존재의의에 대해서 돌이켜보게 만든 난리판이었죠. 아이언맨 갑옷의 진정한 존재의의는 뭐냐고 멘토인 살이 물어보기도 했고요. 원작 해서 생각난 건데, 전반적으로 원작의 익스트리머스 씨리즈와 ‘다크나이트’ 그리고 ‘어벤져스’를 아이언맨 영화 시리즈에 접목시켜 최선의 엑기스만 우려낸 느낌이 듭니다. 특히 생각보다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의 영향력이 강한 것 같아요. 진짜 만다린은 따로 있으며, 그의 심복인 줄 알았던 2인자가 진짜 끝판왕이란 설정만 해도 ‘배트맨 비긴즈’가 떠오르는 마당에 원작에서 해당 히어로의 최강최대 숙적이라 할 존재를 사이코패스 테러범으로 포장한 각색은 ‘다크 나이트’에서, 그리고 주인공의 몰락 혹은 추락에 이은 고군분투와 부활은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아이언맨 씨리즈 혹은 어벤져스 연대기를 좋아하는데도 좀 불안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1편과 2편을 연출한 존 파브르 감독이 PD가 됐고 다른 감독이 맡았다는 소식을 전해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감독 자신이 배역을 맡은 해피 호건도 일찍 퇴장하다시피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심히 기뻤습니다. 2편에선 감독의 권한을 이용해 자기 출연분량을 팍팍 늘린 듯해 눈꼴 시렸거든요. 2편이 전반적으로 알차게 짜여진 작품이었다면 모를까 안 그랬던지라 이 양반이 감독직을 안 맡아서 다행이지 싶었죠. 그래도 호건이 나름 중요한 건수를 올려 극의 전개에 큰 공헌을 하기도 하고, 2편에 비해 전반적인 내용과 연출도 앞뒤가 척척 맞아들어가는 편이더라고요. 진작 이랬어야지.

 

우리의 까불이 회장님 토니의 난장을 보고 싶어하시는 분들 그리고 말 그대로 박 터지는(갑옷 머리 사람 머리 할 것 없이요.) 결전을 보고픈 분들에게 본작을 보시길 권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아, 스텝롤 끝나고 나서 깍두기 영상 나오니 유념하시길.

 

 


덧글

  • 이선생 2013/04/26 00:03 # 답글

    다 좋은데 만다린을 망쳐버린 건 좀 그렇더군요...
    반전으 넣는건 좋지만 그런식으로 넣는 건 좀 씁쓸하더군요...
  • zemonan 2013/04/27 08:46 #

    아쉽긴 한데, 이미 다른 영화사에서 선수를 쳐버린 마당이라 똑같은 연출을 마냥 밀어붙일 수도 없었을 거예요. 1편과 2편의 경우 나름 원작의 빌런들을 충실히 살리려했지만, 결과물이 무지 좋은 것도 아니었고요.
  • K I T V S 2013/04/26 00:36 # 답글

    오늘 영화보고 ZEMONAN님 리뷰도 봤어요^^

    1. 하늘에서 추락하는 포스터의 장면은 '전투에 패해서 쓰러짐'인 줄 알았는데.. 그 상황과는 좀 다른 것 같아 에잉.. 이런 느낌이 들었고..

    2. 저도 만다린의 정체가 드러날 때 느꼈던 감정이.. '쏘우의 직쏘'와 '배트맨 비긴즈의 라스 알 굴'이었습니다;;

    3. 리뷰 초반에.. 미국을 풍자하는 장면이라거나.. 악당의 부하들이 귀환병으로 쓰인 이유를 저는 이유를 잘 몰랐던데.. 그러한 이유가 있었군요;;
  • zemonan 2013/04/27 08:48 #

    은근히 낚아대더란 말이죠. 니힛.
    명백한 패러디라 봐도 되겠죠.
    마블의 만화들을 영화로 만든 작품들은 현실적인 테제를 잘 안 다루는 편인데, 나름 신선했습니다. 미국인들한테도 잘 먹혀들어갈 테고요.
  • 신화만세 2013/04/26 06:17 # 삭제 답글

    토니가 진정한 영웅에 대해 깨닫는 내용이군요. 정말 재미있어보이지만 전 미국이라서 못 봅니다. 쳇. 영웅은 대중에게 찬양을 받지만 영웅 개인은 정말 힘든 삶을 살아야하는게 아이러니합니다. 불멸의 이순신 마지막화 대사중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저들 또한 나의 피도 원할걸세" 백성들을 지키고 싶었지만 그들을 못 지켜내서 얼마나 괴로웠는지 드러나는 대목이였죠.
  • zemonan 2013/04/27 08:49 #

    불법다운로드다 뭐다 해서 다른 나라에서 먼저 개봉하는 사례가 자꾸만 늘어가는군요. 힘겹게 노력하는데도 언제나 2% 부족하다며 자학하는 건 영웅들의 숙명인 듯합니다.
  • tertius 2013/04/26 14:38 # 답글

    한 가지, 사소한 것이지만.. 토니 스타크가 마야 한센과 하룻밤을 보내면서 그냥 그녀의 육체만 즐긴(..) 건 아닌 듯합니다. 나중에 한센이 토니를 회유하려는 장면에서 그때 토니가 남긴 '내가 누군지 알잖아' 쪽지를 뒤집어 보여주는데, 모종의 수식이 빼곡히 적혀 있었죠. 그걸 보면 익스트리미스를 그 정도까지 안정(?)시킨 건 아마도 토니의 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래서 자기 한계를 느끼던 한센이, 조직의 스타크 말살 결정이 내려지자 위험을 무릅쓰고 토니와 접촉을 시도한 거겠고요.
  • zemonan 2013/04/27 08:50 #

    아, 그러고 보니 그걸 깜빡했네요. 원작에서도 토니가 익스트리미스를 다르게 응용했던 대목을 활용한 것 같습니다. 킬리언이 과거의 토니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막나가는 군상으로 타락하는 것도 흥미롭단 말이죠.
  • 2편 2013/04/26 14:42 # 삭제 답글

    사실 2편 스토리의 문제는 존 파브로 감독이 아니라 제작사... 오히려 감독은 그런 제작사에게 항의하려고 감독직 때려치겠다고 한 적도 있었죠
  • zemonan 2013/04/27 08:52 #

    협의가 잘 안 됐다고 들었습니다. '스파이더맨 3'도 그랬다죠. 하지만 파브르 감독도 레이미 감독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워요. 1편도 좀 싱거웠던 점을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고요.
  • sigaP 2013/04/27 02:03 # 답글

    정말 뜬금없고 웃긴 이야기이긴 하지만 42번째 수트라는 것도 참...시빌워의 42번 계획이 탁 생각나더라구요
    그리고 그 42의 발원지는 어느 은화백과사전...이 사람들이 정말! ㅋㅋ
  • zemonan 2013/04/27 08:57 #

    그런 속뜻이... 근데 은화백과사전이라뇨?
  • sigaP 2013/04/27 09:43 #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라는 소설서 42가 삶과 우주 그 모든 것들에 대한 답 이라고 나옵니다.
    그 후로는 SF나 공상 과학이라 불릴 만한 것들에서는 저 42를 패러디하는 것을 넣는 희안한 전통이 생겨서...
    함 영화를 보거나 게임할때 숫자가 나오면 주목해보세요. 저 42가 곳곳에 숨어있을 수도 있습니다.
  • zemonan 2013/04/29 03:38 #

    언제 한 번 그 책도 정독해봐야겠군요. 42라... 기억해두겠습니다.
  • sai 2013/04/29 21:32 # 삭제 답글

    아이언맨3 재밌게 보고도 만족을 못하고 뭔가 부족하다 싶어 여기저기 예고편도 찾아보고 위키도 뒤저보고 입맛 쩝쩝 다시다 써놓으신 감상 읽고 갑니다.
    가슴으로는 느끼면서도 말이나 글로는 능력이 딸려 표현이 안되는 부분들을 적절하게 짚고 표현해주셔서 재밌게 읽었습니다....만
    BD나 DVD가 발매된 것도 아니라 영화관에서 볼 수 밖엔 없을텐데 이많은 요소요소들을 머릿속에 갈무리하고 감상을 쓰시다니 한숨밖에 안나오네요 흐...
  • zemonan 2013/05/04 08:56 #

    감상에 도움이 되셨다면 저도 기쁘죠.
    마블 시네마 씨리즈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참 인상적이라서 보자 마자 감상을 정리한 덕을 본 셈이죠.
  • 들너구리 2013/04/30 00:44 # 삭제 답글

    좋은 리뷰 감사히 잘 봤습니다
    친구들과 공유하기 위해 페이스 북에 퍼가도 될까요? ^^
  • zemonan 2013/05/04 08:56 #

    출처만 확실히 밝혀주신다면야 상관없습니다.
  • 홍지애 2013/05/02 19:05 # 삭제 답글

    정말 정리를 잘 해두셔서 제 블로그에 좀 퍼가도 될까 여쭤보려구요!
    제가 생각하지 못한부분도 잘 설명해주셔서 더 깊이 이해하게 됬습니다^^

    우선은 출처 밝혀서 올려둘게요~만약 싫으시면 내리겠습니당!!
  • zemonan 2013/05/04 08:57 #

    되고 말고요. 달리 감상할 여지가 생기셨다면 저도 좋죠.
  • 잠본이 2013/05/05 00:07 # 답글

    만다린에게 총맞아 죽은 사람은 정유회사 사장이 아니라 회계사라고 나옵니다.
    참고로 그 록손이라는 이름의 정유회사는 원작에서부터 깨알같이 등장하는 마블 유니버스의 가상기업인데 1편이나 콜슨요원 단편영화에서도 주유소 스탠드로 등장했죠. 3편에서 결전을 벌이는 플랫폼도 록손 소유인데 기름유출사고 이후 버려진걸 킬리언이 주워쓰고 있다~고 나오니 꽤 출세한 셈입니다.
    이름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엑손모빌에서 따온게 아닌가 싶기도.
  • zemonan 2013/05/05 21:32 #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성의 의미로 수정 안 하고 그냥 놔두렵니다. 이런 실수는 두고 두고 곱씹어야죠.
    저도 엑슨이 떠오르더군요. 유사한 사고를 저지르기도 했고... 원작과 부록 영상에서도 나왔단 말이죠. '연가시'처럼 실제 회사인 엑슨에서 이름을 빌려줬으면 PPR 한 번 뻐드러지게 햇을 텐데 아쉽겠습니다요.
  • 잠본이 2013/05/05 21:51 #

    아무래도 부정적인 각도에서 묘사되는 거니까 PPR로 쓰기는 좀 그렇겠죠.
    오라클처럼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PPR은 많이 나오더군요.
  • zemonan 2013/05/09 14:18 #

    연가시의 조아제약이 오히려 드문 케이스라 하겠습니다. 본작의 제작에 중국이 관여해서 그런지 중국개봉판은 또 달리 편집됐다고 하더군요. 유덕화가 만다린 역활을 제안받았다가 거절했다던데...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 신화만세 2013/06/02 19:03 # 삭제 답글

    이번 편의 토니가 트라우마 겪는걸 보고 정말 실감나더군요. 외계인과 인간이 아닌 생물하고 조우하고 하마터면 죽을 뻔했으니 잠도 제대로 못자는 그 모습을 보면 죽겠더군요. 이번 영화는 토니가 자기 자신에 대해 자각을 하려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zemonan 2013/06/04 14:56 #

    원작에서도 토니는 겉으로야 당당하고 느물거리는 척 하면서도 속으론 진땀빼는 부류로 그려지더군요. 더욱이 성격상 아는 사람한테 고민을 털어놓질 못하니 저러는 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도 같은 팀원한테 기대기 시작하기라도 했으니 다행이죠.
  • 신화만세 2013/06/02 19:04 # 삭제 답글

    가이 피어스는 프로메테우스에서 웨이랜드 회장을 맡았었죠. 불멸을 찾으러 왔다가 결국은 엔지니어에게 끔살당하지만 말이죠
  • zemonan 2013/06/04 14:57 #

    저도 그 영감님 연기는 인상깊게 봤죠. 가이 피어스의 나이를 감안하면 '대부'의 말론 브란도 못잖은 명연기였다고 생각합니다.
  • 신화만세 2013/06/04 17:07 # 삭제 답글

    그러고보니 로드 역을 맡은 배우가 호텔 르완다에서 폴 역을 맡은 배우였더군요. 정말 감명있게 본 영화였습니다.
  • zemonan 2013/06/05 00:33 #

    로드의 경우, 이전 배우분도 괜찮았지만 치들 선생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2편과 3편이 뒤로 갈수록 상황이 급박해지기에 외모나 연기방식이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 신화만세 2013/10/02 04:58 # 삭제 답글

    토니가 방송국 차량을 이용해 검색하는 장면에서 만나는 방송국 사람의 이름이 개리라서 관객들이 빵 터지더군요.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더군요. 아 그리고 미인 대회에서 점수판을 들어올리는 할아버지는 마블 히어로들을 창조한 스탠 리 옹이 특별출현하더군요. 이 할아버지는 어벤저스에서도 깜짝 출현하더니 여기서도 나오더군요.
  • zemonan 2013/10/10 10:32 #

    개리라뇨...? 스탠 리 영감님께서 진실로 오래오래 사시길 다시금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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