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노보루 선생 그리고 로저 에버트 옹께서 편히 잠드셨길 빌며... 오만잡상

미국의 저명한 영화 평론가이신 로저 에버트옹과 '제로의 사역마'의 작가 야마구치 노보루 선생이 4월 4일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당일 접한 후, 이런 저런 생각이 솟구치더군요. 그래서 뒤늦게나마 상념을 정리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에버트옹께선 콤비인 진 시스켈옹과 함께 두 분을 패러디한 인물들이 본의 아니게 '갓질라(절대 고지라가 아니죠, 암요.)'에 등장하던데, 감독이 평소에 자기 영화를 줄창 씹어대던 두 분을 은근슬쩍 밟아주고 싶어서 이런 만행을 저질렀다고 합니다. 두 분도 이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걸 밝히면서 이번에도 구린 영화 만드느라 수고 많다는 식으로 평론했다고 합니다. 나름 유명한 일화라서 그런지, AVGN과 NC가 갓질라를 리뷰할 때도 언급하더군요.  두 분이 특정 영화를 평가할 때 엄지를 치켜 들거나 내리는 퍼포먼스가 하도 유명해서 흉내내는 사람들도 넘쳐났고, 갓질라 안에서도 나왔더랬죠. 시스켈 옹은 1999년에, 그리고 에버트 옹께선 올해 타계하셨답니다.
에버트 옹께선 그야말로 영화평론에 살다 영화평론에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신 분이었습니다. 갓질라 덕분에 이분들에 대해 알고나서 관련서적들과 블로그 번역문, 예전에 출연하신 평론프로를 찾아보기도 했고요. 한때 영화에 미쳐 살았던지라 향수가 자극되기도 했고, 참 즐거웠죠. 어렸을 때 AFKN을 통해서도 접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애매해서 이건 확신을 못하겠고요. 안 보는 영화가 없는 분이라 '추격자'와 '괴물'같은 한국영화도 리뷰하셨고, 이렇게도 볼 수 있나 하고 배운 것도 적잖았죠.

그리고 야마구치 노보루 선생. 고백드리건대 전 '제로의 사역마'란 작품의 작가되시는 이분의 존함을 자꾸만 헷갈리거나 까먹곤 햇습니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만화인 '돌격 크로마티 고교'의 좋아하는 등장인물도 같은 이름을 지녔기에 막상 '제로의 사역마' 작가가 누구냐고 떠올리려 할 때마다 기연가 미연가하는 지경에 이르곤 했거든요. 쩝. 
'제로의 사역마'란 작품에 대해서야, 뭐 달리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죠. '삼총사'를 비롯해 역사애호가들도 한 수 접어줄 만큼 소상한 역사와 문화인용, 공식을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은근슬쩍 부수기도 하고, 나름 치밀하면서도 꽉 짜인 플롯들... 이 작품이 뽕빨물이란 비난도 많이 받지만 결코 허투루 쓰인 작품은 아니었죠. 주인공인 사이토가 소환되고서 기쉬, 푸케, 왈드같은 적수들과 차례로 싸워나가는 초기 플롯들은 일종의 게임과도 같은 단계별 구조를 적절히 취하면서도 작중 인물들의 관계 및 내면과도 착착 맞물려들어갔단 말이죠. 그 덕분에 팬픽도 참 많이 쏟아졌답니다. 그 덕분에 제게도 나름 의미심장한 작품으로 자리잡았죠. 객기가 동해 처음 번역해본 팬픽이 다름아닌 이 작품과 스타워즈의 크로스오버물이었고, 덕분에 제 삶도 많이 변했답니다.

  내친 김에 터놓고 말씀드리자면... 사실 이 작품에 대한 흥미는 예전에 사라졌답니다. 하지만 이래저래 인연이 있었고, 한때나마 좋아했던 작품이라서 결말이 어찌 날지 궁금하기도 했죠. 참 이율배반적이지만요. 그런데... 이젠 이 요철커플이 투닥거리며 자아낸 난장판을 더 이상 못 보게 되니, 마음이 복잡해지길래 요 10여년을 돌이켜봤습니다.


즐겁게 읽어본 작품들 참 많았는데... 완결날 때까지 지켜본 작품들은 생각보다 적었고, 또 야마구치 선생처럼 작가분이 작고하는 바람에 떠나보내야만 했던 작품도 생각보다 많더군요. 다른 건 몰라도 결말이 참 궁금한 작품들이었고, 한때 미쳐살던 작품들이었는데 말입니다. 애니까지 나왔는데, 작가분이 돌아가셨을 경우엔 한층 안타까웠고요.

미디어의 발달덕분에 두 분 다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블로그 혹은 트위터에다가 근황이나 새글을 올리곤 하셨죠. 야마구치 선생은 너무 행복하게 살았기에 다시 태어나도 자기자신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남기셨답니다. 마흔을 막 넘기자 마자 죽음을 마주해야만 했던 분이요. 그리고 에버트옹께선 돌아가시기 전날 그리고 다음 날에도 리뷰를 올리셨죠.

사람마다 각자의 영역과 삶이 있기에 저 사람처럼 살다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고인과 자신에 대한 기만이자 모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들이 임종시에 취한 행보를 접하고 나니 참 안타까우면서도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이 어찌 살아왔고 어찌 살아가야할지 되새겨볼 수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며 가까운 어르신들 그리고 지인들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가장 먼저 복받치는 생각은... 인생이란 결국 두 번 사는 것도 아니며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란 진리더군요. 그나마 덜 후회하면서 살고자 노력합니다만... 쉽지 않더라고요.

지난 10년동안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준 고인들께서 편히 잠드시길 다시 한 번 기원하며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암흑요정 2013/04/17 23:47 # 답글

    세상에는 수많은 작품이 지금 이 순간에 도태어나고 있지만, 작가의 타계로 완결을 내지못하는 작품도 있지요.
  • zemonan 2013/04/18 23:54 #

    코믹마스터J같은 양반이 업계에 실존했다면 그나마 작품과 이를 아끼던 분들도 매듭을 짓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미국의 경우 만화뿐만 아니라 소설책도 장기 시리즈는 다른 작가가 이어가는 사례가 적잖다고 하니, 차라리 이게 현명하려나요. 아니면...
  • K I T V S 2013/04/17 23:50 # 답글

    제가 구입한(전권을...) 유일한 라노벨이었던 트리니티 블러드,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정체와 과연 이 결말이 어떻게 끝날지 기대했으나 다시는 그 결말을 알 수 없어 안타깝기 그지 없었는데.. 트리-블러에 이어 제로의 사역마 마저 실이 끊어진 이야기가 되어버려서 안타깝습니다. 이제 사이토군의 늠름한 모습도 볼 수 없겠군요.. 트리-블러와 달리 4기 애니가 그나마 결말에 가까운 모습으로 끝난다 하니 그나마 다행일지도요...ㅠㅠ
  • zemonan 2013/04/18 23:56 #

    요시다 선생의 메모를 편집해 출판하긴 했지만, 그 양반의 머릿속에만 잠들어있던 요소가 적잖아서 영... 두 작품 다 애니가 팬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얄궂군요.
  • 대공 2013/04/18 00:18 # 답글

    제로의 사역마가 역사쪽의 아이디어도 풍부했던 모양이군요.

    여튼 이렇게 요절하시는 분들 볼때마다 안타깝습니다.
  • zemonan 2013/04/18 23:57 #

    루이즈의 이름부터 시작해 실제 위인들을 비롯한 역사적 요소가 다채롭게 각색되서 나오더군요. 이걸 사료와 비교하며 읽는 재미도 쏠쏠했다고 합니다.
  • 신화만세 2013/04/18 02:12 # 삭제 답글

    제로의 사역마는 들어만 봤지 실제론 보지 않았습니다. 왠지 끌리지가 않더군요. 그래도 안타까운건 완결이 2권 남겨졌는데 타계하셨다니 사역마 팬들이 정말 애도할겁니다. 정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트리니티 블러드. 정말 재미있는 작품인데 말이죠. 하지만 작가분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미완작이 되버렸죠. 이제 아벨과 카인의 대결은 보지 못할겁니다. 그리고 사실 애니판을 먼저 봤는데.... 그냥 병신이더군요 ㅅㅂ.
  • zemonan 2013/04/18 23:59 #

    전형적인 오락소설이란 거야 부정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나기엔 참 안타까운 작품입니다. 트리니티 블러드 애니판은 막판에 돌아가신 작가분을 애도한다는 식의 글을 삽입했다가 더 욕 먹었다죠.
  • 신화만세 2013/04/19 04:38 # 삭제

    아닌게 아니라 트리니티 블러드 애니판이 너무 생략하더군요. 바로 중요 에피소드인 성녀의 낙인 편을 잘라버렸더군요. 이 자식들이!!! 그리고 본편과 외전은 시간대가 다른데같은 시간대에 배치한건 더욱 ㅂㅅ같더군요
  • zemonan 2013/04/25 23:30 #

    보다 보다 정말 기가 막히더군요.
  • ㅅㅅ 2013/04/18 18:00 # 삭제 답글

    사역마 완결은 결국 애니4기가 공식이되어버렸습니다.... 그설사가....
  • zemonan 2013/04/18 23:59 #

    실로 유감스럽죠. 음.
  • 알트아이젠 2013/04/19 22:55 # 답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로저 에버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나라에서 츤데레나 호두까끼로 이름높은 박평식 평론가님은 현역으로 활동하기전에 과연 10점짜리 영화가 나올지 내심 궁금합니다.
  • zemonan 2013/04/25 23:36 #

    되도록 영화의 장점을 보고자 하는 에버트옹과 달리 공격적이랄까 신랄하다 싶을 만큼 노골적인 평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박대인께서 펜 놓기 전에 그런 작품이 과연 나오긴 할는지...
  • ㅇㅅㅇ 2013/05/29 03:36 # 삭제 답글

    에공, 아쉽네요. 아무리 오락거리라고 하지만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쏟고 많은 팬들에게 재미를 선사한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비록, 돌아가셨지만 그분들이 남긴 발자취는 오래오래 회자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zemonan 2013/05/29 04:35 #

    그분들의 작품이 온전히 완결되지 못해서 더욱 안타깝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기억에 남을 듯합니다...
  • 신화만세 2013/12/08 05:46 # 삭제 답글

    제로의 사역마가 주인공이 소환하는걸로 시작하기 때문인지 팬픽에선 여러 인물들이 소환되더군요. 성배전쟁의 서번트나 양 웬리, 다스베이더나 여러 캐릭터들이 나와서 스토리를 진행하죠. 그래서 시에스타의 출신지도 그에 따라 바뀌고요. 조아라에서 창세기전이랑 크로스오버한 소설이 있었는데 루이즈가 검 아수라를 소환하여 직접 싸우는 내용이죠. 창세기전의 방대한 내용과 캐릭터들이 나와 흥미로운 시너지를 발산하는게 정말 재미있었죠. 게다가 사이토는 안 나와서 그런지 루이즈가 여캐들에게 플래그를 꽂는게 ㅎㅎ(참고로 본인은 백합을 선호합니다.). 이제 2부가 끝나고 티파니아가 등장했는데 작가가 하늘나라로 떠나서 이제 미완이 되었더군요. 야마구치 선생님처럼 말이죠. 정말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고싶어요.
  • zemonan 2013/12/23 05:46 #

    저런... 괜찮은 팬픽의 완결을 못보게 됐군요. 삼가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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