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니클 - 미숙한 영혼들의 상처어린 연대기 천기누설 겸 감상

천기누설이 듬뿍 있으니 조심하세요.

 


‘크로니클’은 세 소년이 어쩌다 초능력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담담하면서도 직설적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입니다. ‘블레어 윗치’가 촉발시킨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페이크 다큐를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 처음엔 보는 게 내키질 않더군요. 물론 이와 같은 형식이 제작비를 절감시켜준다는 이점이 있기도 하고, 제작진에게든 관객에게든 여러모로 장점이 있기야 합니다만…. 그런데 이 작품은 그와 같은 개인적인 편견을 아주 대차게 밟아줘서 기뻤습니다.


이 작품은 전반적으로 앤드류의 자전적인 촬영일지 형식을 띄고 있는데, 처음엔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내밀하게 묘사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동조하게끔 정적이면서도 단조롭게 구도를 잡습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화면의 시점이 바뀌는 강도가 높아지며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멋지게 은유하더라고요. 관점의 교차 대비를 통해서 인물들간의 교감과 소통을 훤히 비추는데, 여친과 끊임없이 마음을 나누고 교감하려는 맷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며 스스로를 추하게 만든 자들과 똑같이 변질되는 앤드류의 변화가 확연하게 대조되더라고요.


앤드류가 염동력으로 카메라를 띄워 자기자신을 비롯한 주변인물들과 사물을 찍는 장면이 곧잘 나오는데, 이와 같은 연출이 그의 힘과 그 자신이 세상에서 유리돼가는 느낌을 부각시킵니다. 관객이 순간부터 비로소 작중인물의 시점이 아니라 정확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앤드류를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관객들의 시점이 카메라마냥 앤드류의 초능력에 쥐락펴락당하는 일반인들의 시점과 동일시되며, 앤드류가 상처받은 군상이라는 느낌과 걸어다니는 폭탄이란 작중 인물들의 느낌을 공감하게 되거든요.


이윽고 앤드류가 자신의 힘과 정신머리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폭주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영화의 시선은 급속도로 분열됩니다. 앤드류가 강도질을 하다 우발적으로 카메라를 날려먹은 다음, 막나가면서 구경꾼들의 폰캠과 건물의 감시카메라, 방송국 카메라, 맷의 여친이 잡은 디카로 정신없이 시점이 옮겨 다니죠. 앤드류와 , 그리고 도시가 처한 상황 심리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압축한 미장센이었습니다.



무너진 삼위일체

 


세상엔 삼위일체를 비롯해 셋을 기조로 한 신화가 넘쳐나. 홀로 버텨내지 못해. 둘만 있으면 분열하고. 셋이 모여야 비로소 안정을 찾지.

From 윤회의 라그랑제

 

앤드류 말고 다른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소년들에 대해 살펴보죠. 세 소년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기들만의 능력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누구보다도 친밀한 관계를 다져갑니다. 더욱이 텔레파시로 인해 각자의 위기감과 마음속의 상처를 교감하게 된지라 친구들의 사소한 행동마저 무시할래야 무시할 수가 없었죠.


앤드류의 사촌이자 유일한 친구나 다름없던 맷은 약도 하고 세상 만사에 반항적으로 구는 삐딱이였습니다. 맷은 사촌인 앤드류가 온 세상에 척진 것처럼 굴어서 상대하기 불편한 적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희안하게도 정작 영화 초반엔 맷이 훨씬 도발적인 인간처럼 묘사되더군요. 사람은 자기 능력 이상의 뭔가를 꼭 바라기 때문에 온전히 만족감에 잠기지 못한다는 쇼펜하우어의 문구를 인용하질 않나, 파티장을 철학에 따라 재단하질 않나…. 헌데 중간에 초능력으로 같이 장난을 치면서 두 소년의 진정한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맷은 그냥 가게손님의 껌만 뽑으려다가 실수로 사람을 치다시피 해 도망치려들지만, 앤드류는 차를 밀어버려 사람을 잡을 뻔하고도 초능력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들고 사람 안 죽었으니 그만이라는 식으로 굴죠. 뒤로 갈수록 맷은 지금까지와 다른 존재가 되려 노력합니다. 좋아하던 여자에게 품고 있던 흑심도 한몫했지만, 초능력을 얻으면서 일종의 여유감과 위험할 수도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났거든요. 그리고 조금씩 앤드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맷 대신 학생회장후보 엄친아 스티브가 앤드류와 가까워집니다. 스티브는 초능력에 각성한 후, 여자친구마저 제끼고 맷과 앤드류와 노는 데 심취합니다. 심지어 앤드류마저 우리가 네 진짜 여친(…)이라는 식으로 비꼬기까지 하죠. 어쩌면 스티브는 집안환경은 물론이고 모든지 모범적으로 혹은 잘나게 굴도록 압박하는 주변사람들과 배경으로부터 일탈하는 계기를 갈망했던 게 아닐지. 동굴로 들어갈 때도 가장 적극적으로 굴더군요. 자신을 참되게 알아주는 친구들은 앤드류와 맷밖에 없다고 생각해서 애착을 갖게 된 것 같더란 말이죠. 그렇기에 소심한 앤드류가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치르길 촉구하기도 합니다. 스티브의 언사를 들어보면 맷과 앤드류를 이전에 유심히 지켜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스티브는 자신과 정반대인 앤드류가 비슷한 고독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살갑게 굴고, 그가 좀 더 나아지라고 이것저것 해주려던 게 아닐까요? 이는 분명히 호의로부터 비롯된 행동이지만, 우월감이 내포된 친절이라는 것도 부정하지 못할 겁니다. 본인이 자각하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둘째치고요.


슬프게도 가진 자들, 자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은 약자들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법입니다. 외모, 체격, 성격, 능력, 집안, 성장환경…. 친구들에 비해 이 모든 게 뒤떨어진다고 자승자박하던 앤드류가 초능력을 가장 강력하게 키워간 것도 어찌 보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간에 초능력으로 장난치다가 죽을 뻔했던 스티브를 구해주고 나서 인정받았을 때 지었던 표정이 참…. 앤드류의 열등감과 괴리는 기어이 삼인조의 관계마저 결단내고 맙니다.

 



심연을 바라본 자, 심연이 바라보는 자.


항상 열등감에 갇혀 살던 앤드류가 처음으로 찾아낸 자기만의 우월한 요소. 이에 더욱 매료되고 능력을 키워가는 것도 순리죠. 한술 더 떠 갈수록 힘을 구사해야하는 정당성을 찾아가면서 약육강식을 내세우고 주변환경을 탓하기까지 합니다. 제국주의시절 서양놈들이 식민지를 점령하면서 진화론을 들먹였다죠?

앤드류가 자길 모욕한 자들에게 복수할 때 저열한 쾌감에 동조할 여지가 생기지만, 금세 섬뜩한 느낌이 들더군요. 복수는 독과도 같다죠. 당한 만큼 갚아주기보단 그 이상으로 되갚으려 들게 되거든요. 불량배들이 앤드류를 망신준 건 사실이지만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려 든 적은 없었단 말이죠.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죠? 준비 안 된 자가 초월적인 능력을 손에 넣으면 망가질 수밖에요. 기가 찬 건 앤드류가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부류들과 다를 게 없는 존재가 되간다는 점입니다. 부모님과 동네양아치들, 학교 일진들과 동급생들에게 늘 시달리던 앤드류는 맷이 자신을 말리려들자 내가 왜 또 다른 압박을 받아야 하냐는 식으로 대듭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압박을 가하는 존재인 아버지. 한때 소방수로써 맹활약하다 다쳐 잘리고 연금이나 챙겨먹고 살며, 앤드류가 가장 존경했지만 이제는 가장 증오하는 말종이 다 됐죠. 세상만사 뜻대로 안 될 때마다 가장 만만한 자식새끼 두들겨 패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전형적인 폭력가장이니…. 앤드류도 일이 꼬이자 남 탓하고 열등감을 추하게 배출하기까지 합니다. 그가 어머니 약값을 위해 강도질을 시도할 때 아버지의 방화복을 입는 장면은 서글프기도 하고 애틋하더군요. 아버지를 존경했던 시절에 당신께서 입던 옷이거늘, 아버지와 다를 게 없는 데다 훨씬 막장스런 짓거릴 하려고 이 옷을 입다니 말입니다. 게다가 이런 행각으로 인해 오히려 돌이키지 못할 파국으로 치닫고 맙니다. 처음엔 자길 괴롭히는 놈들 돈이나 털려고 하다가 액수가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자, 전혀 상관없는 주유소를 털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발적으로 화재폭발을 일으켜 아버지의 방화복을 날려먹고 중상을 입습니다. 방화복을 불장난으로 날려먹다니 참 얄궂죠.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생각은 않고 어쩌다 손에 넣은 힘만 휘두르려 드니 스스로의 부정적인 측면만 도드라진달까요. 그 난리를 피우면서 평소 사용하던 ‘찌질한’ 가방을 챙기는 행동양상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겠죠.

 


소통의 연대기


 일본과 미국에선 이 작품을 80년대의 걸작 ‘아키라’의 영화판이라고도 부르더군요. 본작의 감독이 배우들에게 참고서로 ‘아키라’를 보여줬다고 하며, 실제로 내용상으로나 이미지로나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습니다. ‘아키라’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테츠오와 카네다의 관계는 앤드류 와 맷과 통하는 구석이 많거든요. 삐딱선 맷이 여자친구 제대로 사귀면서 성장하는 거나 앤드류가 맷에게 우정과 열등감을 동시에 느끼고 이로 인해 더욱 막나가게 되는 거 하며…. 폭주족 콤비에 비하면야 그래도 꽤나 개념있고 얌전한 친구들이긴 하지만요. 맷도 앤드류의 행각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려 들고요. 


막판에 앤드류가 병실에서 건물 한구석을 날리며 결정적으로 폭주하기 시작하고, 환자복을 입은 채 발광하는 장면만 봐도 모티브를 알 수 있죠. 


조금 있으면 후속작이 개봉하는 ‘타이탄’도 감독이 이래저래 ‘세인트 세이야’를 오마쥬했다고 하던데…. 재패니메이션 세대들이 슬슬 할리우드에서도 촉을 세우기 시작하네요.


근데 앤드류가 장기자랑 대회에 나가 생전 처음 잘나갔다가 순식간에 추락하는 내용은 스티븐 킹의 ‘캐리’를 연상시키더군요. 캐리도 자기 부모가 마음 속 상처의 가장 큰 뿌리이며, 미인대회에서 우승하는가 싶더니 욕을 봐 초능력을 마구 남발해 막장으로 치닫거든요.


초능력을 가진 자가 모두 영웅은 아니다. 이 문구를 역설적으로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작품은 관점을 달리하면 전통적인 히어로와 빌런의 탄생기이기도 하거든요. 포스터에서 파괴돼가는 도시를 향해 한 소년이 손을 펼치고 있는데, 이 소년이 파괴를 주도하는 듯이 보이기도 하고 말리려드는 듯이 보이기도 하죠. 그리고 본작을 직접 보고 나서야 이 인물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답니다.



 

모든 대립은 생성, 창조로 나아가는 통로가 있다. 주저앉아 자멸, 공멸, 죽음을 맞이하는 걸 바라볼 때 인간은 안타까워하는 법이다. 대립, 갈등에서 주저앉아 새로운 생성으로, 창조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맴돌다 자멸하는 군상들. 이를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립에서 생성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By 권가야 From 남한산성

저는 개인적으로 본작을 소통이 좌절되면서 발생하는 비극이라 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란 형식도 이를 잘 받혀주고요. 카메라의 주체가 바뀌는 순간의 교감 그리고 앤드류가 혼자서 자기자신에 대해 고민할 때 그의 행동과 표정을 가만히 잡는 순간이 자주 나오며, 보는 이로 하여금 곱씹을 여지를 줘서 좋더군요. 그래서 카메라에다 대고 처연하게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방랑하는 영혼들에게 축복 있길 빌며 이만 줄입니다.


덧글

  • 킨키 2012/03/20 17:06 # 답글

    잘 봤습니다
  • zemonan 2012/03/21 23:05 #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 신화만세 2012/03/20 20:24 # 삭제 답글

    오우!! zemonan님 드디어 돌아왔군요!! 아직 이 영화를 안 봐서 리뷰는 안 봤지만 님의 솜씨라면 아주 명리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곧 페이트 제로도 재개되니 빨리 돌아오시길 기대합니다.
  • zemonan 2012/03/21 23:06 #

    이래놓고 또 방영이 연장되기라도 하면... 두고 봐야죠.
  • 잠본이 2012/03/20 20:48 # 답글

    언제나와 다름없이 핵심을 꿰뚫는 명쾌한 분석이십니다.
  • zemonan 2012/03/21 23:07 #

    말씀 감사드립니다. 잠본이님의 리뷰도 보고 작품을 또 달리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슈퍼소년 앤드류는 다행히 주변에 좋은 멘토들이 많아 구김살 없이 살았죠. ...그러고 보니 그 작품의 성우 중 두 분이나 타계하셨네요.
  • 잠본이 2012/03/21 23:14 #

    최고의 개그는 앤드류 클레멘츠가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사는데 오히려 여기 앤드류보다 더 반듯하더라는 거죠(...)
  • zemonan 2012/03/22 20:36 #

    허 참... 이런 것도 일종의 역 오마쥬려나요. 앤드류의 서포터라 할 박사님께서 제때 제때 충고하고 도와줬던 게 기억에 남네요. 좀스런 구석은 있었지만, 보기랑 달리 앤드류의 영웅코스를 확립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죠.
  • scwzx7 2012/03/21 12:00 # 답글

    아직 영화는 보지않았지만 리뷰를 보면서 스파이더맨이 자꾸 생각났는데 앤드류는 삼촌이 없는 피터파커같은 느낌이 나는군요.진정한 영웅이 되기위해서는 시련이 필요하지만 시련이 꼭 좋은방향으로만 작용하지는 않는데다 시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스파이더맨의 삼촌같은 길잡이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니까요.
    그런의미에서 세명의 주인공들은 서로를 길잡이로 삼아 성장한것 같아요.특히 앤드류는 반면교사역활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것처럼 보입니다.아직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대단한 작품이 나온것 같군요.꼭 극장에서 봐야겠습니다.
  • zemonan 2012/03/21 23:11 #

    벤 파커는 정말 보기 드문 군자였죠. 피터가 자신의 유일한 아버지라고 힘차게 선언하고도 남을... 벤 삼촌의 존재가 피터를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긴 했지만, 이게 과연 행운이었을지 불운이었을지.
    세 친구들에겐 서로에게 악의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자꾸만 엇갈리고 좋은 뜻에서 한 일이 앙화를 부르더군요. 사건이 일단락된 후에 흘러나오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도 처연했습니다.
  • !? 2012/03/22 09:25 # 삭제 답글

    대놓고 애니매이션을 오마쥬했다고 말하는 나이어린 감독들이 드디어 나오기 시작했네요.
    사실 워쇼스키형제라는 특별케이스가 있기는 한데 그들은 재패니메이션세대라기엔 나이도 많고 sf매니아쪽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죠.사실 90년대가 재패니메이션의 황금기였으니 지금이 정당한 시기인게 당연하군요.
  • zemonan 2012/03/22 20:39 #

    워쇼스키 형제가 스피드레이서로 재패니메이션 매니아라는 걸 인증하긴 했지만, 말씀하신 대로 취향이 SF작품 쪽에 쏠린 듯합니다. 90년대엔 80년대의 거품이 빠져 애니업계도 한창 피보다가 에반게리온 같은 작품들 덕에 전환점을 얻었죠. 그와 같은 시기였기에 인상깊은 작품도 많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 spawn 2012/03/23 17:52 # 삭제 답글

    변화라... 제 주위에는 자기 자신을 변화한답시고 사태를 악화시키거나 변화없이 수십년을 살면서 그게 진리인 듯한 남에게 강요하는 인간들이 넘쳐서 변화라는 말만 들으면 몸서리가 나더군요.
    하여튼 리뷰 잘 봤습니다.
  • zemonan 2012/03/24 00:41 #

    변화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겠죠. 하지만 본작의 인물들처럼 변화해야만 할 때, 혹은 자기 정신머리를 고수해야만 할 때를 잘못 잡아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인간들은 적지 않을 겁니다.
  • maintenant 2012/03/29 05:24 # 삭제 답글

    아키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고보니!
    그러고보면 미국 이능배물 역사도 엄청나게 오래됐는데 왜 이런 초능력자가 진작에 안나왔나 의아하죠. 당장 저만 해도 저런 능력 하나 생기면 영웅놀이같은것보단 남들 눈치보면서 호신용으로나 깔짝깔짝 써댈테니까요.
  • maintenant 2012/03/29 05:28 # 삭제

    킥애스나 크로니클같은거 보면 다른 히어로물들하곤 다르게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할까, 공감이나 감정이입같은게 술술 잘되죠. 진짜 친구들이 할법한 행동이나 생각을 영화속 주인공들이 하고 있으니까요.
  • zemonan 2012/04/10 13:22 #

    미국은 히어로물이 워낙 광범위하고 뿌리가 깊어서 특이한 능력자는 이 장르를 통해 활동하는 코스가 자연스럽게 박혀 있는 것 같아요. 킥애스도 괜찮긴 한데, 원작 만화는 진짜 꿈도 희망도 없어서 어안이 벙벙하더라고요. 휴.
  • scwzx7 2012/03/29 10:10 # 답글

    그리고보면 염력이 주된 초능력인것도 이영화의 묵직함을 강화시키는 요소인것 같습니다.
    사실 그동안 애니나 영화에서 사용된 초능력들은 뭔가 특별하다는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작품마다 항상 뭔가 조금씩 다른 능력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염동력같은 능력들이 오히려 비주류가 되어버리고 말았죠.제가 아는 초능력작품중에서 최근에는 히어로즈와 절대가련칠드런만이 염력을 쓰는 초능력자를 다루는 작품이었으니 정말 숫자가 적다고 할수있지요.이렇게 우리가 쉽게 떠올릴수있는 초능력이기에 염력은 주인공에게는 어울리지 않다는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염력을 쓰는 주인공들이 현실적으로 다가올수 있었던게 아닐까요.
    그들에게 초능력은 특별한게 아니라 이제까지 할수없었던 일을 할수있는 도구에 가까운 이미지로 설정한것처럼 보였습니다.그렇기에 그들의 비극을 초능력이 가속한 이유중에는 이런이유도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워요.
    차라리 좀 다른 종류의 능력이었다면 결말이 달라질수도 있을수도 있다고 보니까요.하여튼 간만에 좋은영화였습니다.
  • zemonan 2012/04/10 13:27 #

    초능력 자체가 판에 박힌 능력이라 인식된지가 오래라 초능력물도 많이 쇠퇴했죠. 소설이나 만화에서도 벼라별 작품이 쌍팔년대까지 다양하게 나오기도 했고요.
    말씀하신 대로 염동력은 관객들이 이해하기가 편해서 설명을 길게 끌지 않아도 되는 게 장점이죠. 본작의 내용은 초능력이 아니라 총 혹은 자동차를 얻어 맛들이는 식으로 바꿔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잠본이님께서 평가하시더군요.
    안타까운 노릇이죠. 힘이 득보단 독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쉽사리 얻으면 쉽사리 말아먹는단 옛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 doffjs 2012/03/29 13:42 # 삭제 답글

    생각보다 인기가 없나?
    우리동네에서는 상영을 안하네요.
  • zemonan 2012/04/10 13:27 #

    윽. 벌써 퇴출됐나 보네요.
  • 후카츠노히 2012/04/06 11:45 #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링크 추가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 드립니다.
  • zemonan 2012/04/10 13:28 #

    덧글에 감사드립니다.
  • !? 2012/04/06 13:43 # 삭제 답글

    이거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만한 영화같습니다.실제로 네이버평점이 6점대가 되버렸어요.실제로 보고나서 느낀 제감상도 재미있지만 추천은 힘들다였으니까요.
    그래도 미국에서는 충분히 본전이 나온것같으니 후속편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 zemonan 2012/04/10 13:29 #

    속편이 나오긴 힘들 것 같지만... 얼마든지 가지칠 여지가 있긴 하죠. 제작비가 생각보다 적게 들여서 본전은 빨리도 뽑았다고 하더군요.이히.
  • 신화만세 2012/06/02 02:08 # 삭제 답글

    보통 초능력을 얻으면 인생이 펴지는게 일반적인 히어로물의 레퍼토리인데 이 작품은 초능력을 얻고 타락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어서 좋더군요. 처음엔 초능력으로 재밌는 일들을 경험하지만 결국 주인공이 타락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것이 꽤 현실적이더군요. 그러고보니 데스노트의 주인공이나 코드기어스의 를루슈도 초능력을 얻고나서 타락하니 초능력을 제대로 못 다루면 어떻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신화만세 2012/06/02 02:10 # 삭제 답글

    그러고보니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최초 작품이 블레어 윗치였죠. 그 후 클로버필드, REC, 파라노말 액티비티 등으로 이어지게 됬죠.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공포영화에 쓰면 절말 효과만점이더군요. REC 같은 경우는 주인공들이 도망가느라 카메라가 흔들려서 공포감을 느끼게하고요. 사실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최고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거 1편 결말부의 비명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2편도 결말이...
  • 신화만세 2013/04/18 02:14 # 삭제 답글

    이 작품은 스파이더맨처럼 초능력을 얻으면 영웅이 된다는 클리셰를 깨부숴서 인상적이였습니다. 통제하지 못하는 힘은 결국 파멸을 부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 zemonan 2013/04/19 00:02 #

    왓치맨을 비롯한 히어로물에서도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 힘은 독에 불과하다는 교훈이 거듭 나오곤 하더군요. 그리고 앤드류가 저렇듯 파멸해가는 과정을 통해서 맷은 오히려 균형을 잡게 됐으니 얄궂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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