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사서 1~12화. 하드보일드 러브스토리? 천기누설 겸 감상


-늘 그렇듯이 천기누설이 왕창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하세요.-


고백드리건대, 이 작품을 보려 한 이유는 주인공이 성격도 능력도 골 때린다는 소문을 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2화까지 보고나니 뭐랄까, 뜻밖에도 ‘물건’을 건진 느낌이 드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1화 끝날 때까지 하뮤츠가 주인공이란 걸 몰랐습니다. 물론 하뮤츠도 기대에 걸맞게 인상적인 인물이었죠. 음흉한 데다 파멸적인 성격, 골 때리는 전투방식, 이중삼중 흉계를 까는 거 하며...

옛날 같았으면 주인공과 적대하는 조직의 간부로나 어울릴 법한 인물인데, 요샌 이런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게 유행인가보죠? ‘베요넷타’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이토록 능력도 정신도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무적에 가까운 인물은 주인공 노릇하기가 힘들죠. ‘헬싱’의 아카드나 ‘지뢰진’의 이이다형사처럼요. 이런 작품들은 주인공과 별개로 성장의 여지가 있는 인물을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동시에 공식상의 주인공들로 하여금 이들을 관조하거나 지켜보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작도 예외는 아니죠. 문제가 있다면 노로티나 엔리케 빼고는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죄다 죽는다는 거지만요.



 Boy meets Witch




 본시 ‘책’이란 읽는 자에게 일방적으로 사념을 전하는 게 섭리인데, 첫 번째 에피소드는 이게 뒤집히면서 사건이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애저녁에 황천에 간 책속의 마녀는 자신의 책을 읽는 자들과 소통하고 있었는데, 이런 기이한 상황은 소녀의 예지능력덕분에 성립했던 거였죠. 그녀는 스스로가 죽은 이후 자신의 책을 읽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직접 만나지 못할 사람들이라 해도 자신의 처지와 마음을 동감해준 사람들이기에 그녀는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떳떳하기 위해 잔혹한 운명과 맞설 힘을 쥐어짜내는 데 성공하죠. 폭탄이었던 소년은 그런 소녀를 통해 용기를 얻어 그녀처럼 부조리에 맞서고요. 두 사람의 마음은 시공의 괴리로 인해 결코 온전히 이어지진 못했으나, 서로의 비참한 처지를 공감하며 상대방의 용기를 통해 변화하기로 결심한 순간 그것이 하나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하늘을 개운하게 우러러 볼 수 있는 인간이 됐으니까요.

마녀의 칼이 마지막 순간에 하뮤츠를 제지했던 이유는 아마도 옛 주인의 모든 걸 지켜봤기 때문이겠죠. 하뮤츠가 아니라 콜리오가 직접 시갈에게 맞서야만 옛 주인과 소년 둘 다 구원받을 수 있는 계기가 완성되니까요.

 첫 번째 에피소드였던 마녀와 소년의 이야기를 보고 ‘동감’, ‘시월애’, ‘프리퀸시’같은 영화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군요.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원리가 뒤집히면서 드라마가 전개되는 작품들인데, 시론과 콜리오의 관계도 정상적인 소통방식과는 다른 식으로 관계를 시작했다는 점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 지어진 자들이 지리한 삶으로부터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시공을 초월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해가는 점도 비슷하고요. 종합적으로 본작의 세계관에서 ‘책’이 어떤 물건인지 효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한 에피소드였는데, 이 세계의 일반적인 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뒤집는 역설적인 이야기로 한층 임팩트를 더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방울


엔리케와 노로티가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가장 눈여겨봤던 인물은 바로 레이리아였습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불명확한 이유로 인성을 되찾아간 고기였던 동시에 콜리오의 행동에 있어 변화의 계기 중 하나였던 사내가 이전에도 인간적인 행동으로 또 다른 파문을 일으켰다는 게 드러나죠. 그 영향력도 어마어마했고요.

엔리케는 그를 통해 웃음을 갈구하게 됐고, 레이리아의 선행 덕에 살아남은 쿠몰라는 엔리케에게 변화와 구원의 실마리를 제공했죠. 돌이켜보면 레이리아의 사소한 행동들이 엔리케에게 새로운 구원으로 이어지는 단초들을 선사했던 셈인데, 엔리케도 레이리아 본인도 이를 확실히 알진 못한다는 게 야릇했죠. 하지만 그게 무에 중요할까요. 정말로 중요한 건 그런 사사로운 행동이 결코 덧없는 게 아니었다는 것뿐이니까요.      



 

 모자와 프로파일러


 세 번째 에피소드, 그 중에서도 11화는 본작의 전체적인 양상과 이질적이면서도 얄궂은 일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에피소드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느껴진 인물은 희안하게도 주요인물들 중 가장 큰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윈케니였습니다. 그는 교단의 가장 큰 적이 될지도 모를 청년의 천적으로 양육됐고, 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만 살아가면서, 장기국수가 되기위해 스스로 장기말이 되고자 한 인간이었죠. 쓰러뜨릴 적을 고찰하기 위해 그의 입장에 몰입하겠다고 1인칭마저 오레(俺)에서 보쿠(僕)로 바꿀 정도였죠.

그러던 와중에 그는 자신의 어머니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변모했고, 슬퍼하던 와중에도 적을 또 다시 이해해갔다는 희열을 맛볼 정도로 망가집니다. 그가 적에 대해서 내린 판단은 그야말로 하나부터 열까지 정확하게 맞아 들어갔죠. 가짜모친으로써 고른 대역을 목표물이 차마 내치지 못할 거란 예측도 제대로 적중했을 정도니까요.

우스운 건 윈케니의 적이 그랬듯 그 또한 거대한 부조리에 의해 선택의 여지를 박탈당한 채 적만을 바라보며 살아야했다는 점에서 모카니아와 동화될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단 겁니다. 삶의 의미는 말 그대로 자신이 이용하고 쓰러뜨려야 하는 적밖에 없었으니까요. ‘몬스터’의 룽게 경부가 그랬듯이요.


그러나 그는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죠. 자신과 적은 그다지 차이가 없는 처지의 인간이었으며, 어느 틈엔가 너무도 가까운 짝패가 돼 있었다는 걸요. 어머니와 강제로 헤어져야했던 처지마저 그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매개로 작용했고요. 그는 어느 순간부터 교단의 지시나 작전의 목표가 아니라 적이, 아니 자신이 가장 절실히 원하는 바를 성취시키고자 가짜 모친을 만들어 적과 대면시켰습니다. 어머니와의 재회, 그것이 적이 가장 바라던 소원인 동시에 자신이 진실로 바라던 바였기에... 그것이 자신의 바람이었는지, 아니면 동일시한 짝패의 바람이었는지는 그 자신도 몰랐을 겁니다.

범죄 프로파일러 중에 범죄자들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삶이 파탄나거나 가족을 저버리는 요원들도 적지 않다고 하죠. 프로파일링 수사의 선구자로써 ‘양들의 침묵’을 제작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던 존 더글라스 수사관은 끝내 아내와 이혼했고요. 그러고 보니 쿠로자와 감독의 ‘카케무샤’에서도 다케다 신겐의 대역이었던 도둑이 종당엔 스스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신겐 그 자체가 되기도 했었죠, 음.    

11화가 본작 중에서 이색적으로 느껴진 이유는 이제껏 그랬듯 책이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라 할 두 청년의 회상을 통해서 진실이 반추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11화가 지금까지 이 작품에서 조금씩 강조해오던 또 다른 주제-즉 책에 담긴 기억 자체보다 이를 받아들인 자들이 책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찾아내고 또 부여하느냐가 진실로 중요하다는 걸 확연히 드러내기 위함이었죠. 이는 주요인물들의 행동에서도 잘 부각되죠. 어머니를 잃은 청년은 어머니를 닮은 ‘인형’을 지키려하다, 종당엔 어머니의 가르침을 지키려 합니다. 누군가의 대역으로써 존재를 규정당한 여인은 모든 걸 알고도 ‘자식’을 긍정하고, 그를 잃은 후에도 스스로의 힘으로 걸어 나가죠. 그 둘에게 새로운 비극을 안겨줬던 청년이 책이 아니라 여러 자료와 프로파일링으로 ‘인간’을 분석해가는 과정이 자세하게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받아들여야 하겠죠...



 회색인간들의 부조리



 12화에선 그동안 좀체 드러나지 않았던 매트와 하뮤츠의 관계를 조명합니다. 짝퉁이나마 연인이라 할 사이에서 친구 겸 동거인으로 관계를 바꿔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나름 이해가 가더군요. 진작에 갈 데까지 갔던 사이란 건 좀 의외였지만요.


하뮤츠가 내뱉은 말의 진의를 매트가 알게 되는 과정은 정말 비참했죠. 이는 하뮤츠가 입고있는 복장과 헤어스타일의 변화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처음엔 안경에 시골아낙같은 옷을 입고있더니 나중엔 안경은 벗고 특유의 단촐한 옷을 입었으며, 후반의 전장에선 아예 머리띠가 풀리면서 현재와 거의 흡사한 모습을 갖추더군요. 하뮤츠의 의상과 머리 스타일이 조금씩 현재의 차림새와 흡사해지는 전개는 그녀가 점점 스스로의 본색을 드러내고, 이를 매트가 점진적으로 이해해가는 걸 직설적으로 비유한 연출이었습니다.

가짜 인격을 사랑하고 있었던 거야. 아니 사랑하려 했던 거지. 가짜 연인을 사랑하는 걸 통해 추한 진짜 자신이 아니라, 가짜나 다름없지만 그럴듯한 자기자신을 연기하고 싶었던 거랄까.

By 라이덴 From 메탈기어 솔리드2

무료하고 짜증나던 일상을 깨줄지도 몰라 접근했던 여자, 자신과 컴컴한 구석이 비슷해서 끌렸던 여자, 그리고 어쩌면 자신을 바꿔줄 계기가 될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여자였는데...

그녀에게 있어 매트는 수단이자 심심풀이 땅콩에 불과했죠. 물론 그 이상일 수도 있는 느낌도 풍기긴 했지만요.

그녀가 자신에게 죽고 싶지 않다는 말. 그것은 매트가 자신의 연인이라서 그에게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자신처럼 형편없는 구석을 지닌 닮은꼴에게 죽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던 겁니다. 그녀가 자신을 죽여주길 바라는 이상형은 이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했듯 지킬 게 있어 싸우는, 진실한 ‘투사’였으니까요.

그 뜻을 마지막에 가서야 알고 눈앞의 여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얼마나 한심했는지 새삼 깨달은 겁니다. 아주 절절히 말이죠...

그토록 비웃던 파이프를 아무렇지도 않게 피게 된 것은 자포자기를 뜻하죠. 주전부리를 하던, 부정하고 싶었던 선친의 비뚤어진 자존심을 제대로 물려받은 건 물론이고  고칠 수도 없을 만큼 콱 박혀있으니 걍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살던 대로 살겠다, 이겁니다.

세상과 인간들을 부조리하다고 그토록 비웃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여자와 자신도 기가 막힐 정도로 부조리한 존재들이란 걸 깨달았달까요. 그 사실을 절감한 순간 두 남녀의 사이를 갈라놓듯이 비춰진 나무는 가지와 넝쿨이 엉망진창으로 얽혀 꼬인 듯한 형상을 띄고 있는데, 매트와 하뮤츠의 꼬인 속내와 관계를 빗댄 거겠죠.

만사에 ‘회색’이 존재한다. 좋은 건 아니지만 삶의 일부인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녀와 나의 관계 역시 기껏해야 회색에 불과하다.

By 브루스 웨인 From 배트맨 허쉬

어설픈 회색인간들인 거야 본인들도 잘 알겠지만, 성장 혹은 긍정적인 변화를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때를 많이 탔고, 또 멀리 왔으니 어쩌겠습니까...



 닫으며




 인간이 죽으면 그 모든 기억과 사념이 석판으로 남고 전파되는 세상. 먼저 떠난 자가 남은 자들에게 더욱 생생한 유지를 전해줄 수 있는 세상. 그렇기에 생과 사의 개념이 확실한 듯하면서도 애매하며, 이 때문에 수많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세상이 바로 본작의 세계죠. 한편으로 인간찬가를 반복하며 인본주의를 숭상하는 동시에 같은 인간을 사람도 동물도 아닌 ‘고깃덩이’로 전락시키는 교단마저 존재합니다. 인간에 대해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한편, 인간을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세계이기에 인간으로써의 존엄을 되찾는 행위가 장절하게 비춰지죠. 

이 세계를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데츠카 오사무 선생께서 늘상 강조했듯이 극한의 절망이야말로 진실한 희망을 자아낸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덧없이 끝나는 듯해도 제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 할지언정 분명한 여파를 만들어내기에 무의미한 삶이나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작은 물방울이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는 듯한 과정이 참 잘 묘사된 작품이죠.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나왔다가 금방 퇴장했던 레이리아나 여관아줌마가 나중에 가서는 제각각 누군가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 인물들이란 게 드러나는 순간들이 기억에 남는군요. ‘부기팝’씨리즈에서 볼 법한 이런 연출을 좋아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은 정말 잔혹해요. 등장인물이 죽을 땐 정말 가차 없죠. 그러나 책이라는 매개물로 인해 죽은 자들의 행위가 타인의 시점, 다른 시간대에서 비춰지며 일개단역에 불과했던 인물의 언동으로 인해 무엇이 바뀌고 또 어떤 굴곡이 있었는지가 재조명되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은 서글픈 동시에 아름답더라고요.

재밌게도 이놈의 작품은 의외로 ‘사랑’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 에피소드가 많습니다. 양상은 제각각이고 남녀간의 연심이라고만 단정하긴 힘들지만요. 콜리오와 시론의 공감, 밀레폭의 풋풋한 짝사랑, 노로티가 엔리케에게 느낀 연민, 모카니아와 레나스의 가족애... 매트와 하뮤츠의 어정쩡한 관계도 그렇고요. 

이 작품에 나온 수많은 커플들이 스스로를 제약하는 부조리와 직면해 제각각 긍정적인 결과를 자아낸 반면(암담한 종말을 맞이한 경우가 많긴 하지만요) 정작 주인공이라 할 두 명은 그야말로 떡판이란 게 좀 웃깁니다. 왜냐하면 매트와 하뮤츠는 스스로의 부조리, 그리고 자신들을 둘러싼 부조리에 맞서는 순간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관계와 존재의의마저 바스라질 거란 걸 알기에 이를 피하는 치사스런 ‘어른’들이거든요.

노로티와 엔리케는 무슨 용자물 혹은 치유물에나 나올법한 아그들이라 보는내내 뻥졌는데, 매트와 하뮤츠는 반대로 프랭크 밀러의 ‘신 시티’에나 나올 법한 군상들이란 게 참... 거 왜 쌍팔년대 하드보일드물 혹은 느와르영화에나 나올법한 형사와 팜므파탈 말입니다. 매트가 ‘더티 해리’나 쓸법한 리볼버를 애용해서 그런 느낌이 든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말도 안 되게 하드보일드하고 극단적인 인종들이죠.

정리하자면 작품의 주연이라 할 인물들의 관계전환양상도 그렇고 정말 여러모로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애니인 건 확실합니다.


 깍두기




노로티. 8화의 액션은 ‘노에인’이나 ‘철완버디’의 특정장면 같아서 황당하더군요. 다른 건 둘째치고 등뼈까지 실감나게 그릴 필요가 있었나요?

괴물 자트. 네가 아카드냐? ‘프로토타입’의 알렉스 머서도 아니고 나 참.

매트. 하뮤츠보다 멀쩡한 척 했지만, 괴물과 싸울 때 아군마저 속여 이용하는 데서 음흉한 구석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 수 있었죠.

총알 한 발 남았는데 떨어진 척 하는 건 ‘지존계상’에서 알란 탐이 써먹은 수법이었죠, 아마.

그루니. 하뮤츠랑 엔리케한테 떡되는 걸 보니 신뺑이 전문 몸빵 테스트요원인가 봅니다.

가모. 그냥 수염 기르고 사는 게 낫겠네요.

볼켄. 대체 언제 다시 출연할런지.

포트나. 이전 관장대리께서 저런 양반일 줄이야. 볼켄이 생각하던 이미지는 그야말로 단면에 불과했던 거군요. 하긴 그만한 지위를 지키고, 또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저럴 만도 하죠. 아니면 하뮤츠가 그만한 핵폭탄이라는 반증이려나요.

조무래기 배신자. 엔리케가 책을 통해 봤던 양반이 12화에서 나왔죠. 인물의 재활용에 있어 참 모범적인 작품이라니까요.


엔딩삽화. 특유의 유머와 뉘앙스가 재밌었는데, 요샌 자꾸 심각 일변도로 나가서 좀 그래요.



원작소설책을 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소설삽화를 봤는데, 애니와 달리 하뮤츠가 주근깨더군요. 개인적으론 이게 더 마음에 드네요.


그럼... 


덧글

  • 절제 2009/12/20 12:29 # 답글

    싸사의 매력을 알아주는 분이 또 계시다니 팬으로서 기쁠 따름입니다. 작품 자체는 정말 좋다고 생각하지만 제 생각보다도 취향이 많이 갈리는 작품인지라.. 원작도 꼭 한번 보셨으면 좋겠네요. 애니도 나름 분투하고 있지만 역시 이 작품은 원작의 마력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러고보니 애니판 하뮤츠는 주근깨가 없네요. 지금 알다니.. (수그러든다)
  • zemonan 2009/12/21 05:20 #

    저도 참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유의 하드보일드한 측면이 지나치게 호불호를 강요하는 구석이 있지만요. 소설의 표지에 그려진 하뮤츠도 참 매력적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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