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보고를 가장한 타지마할 잡설 오만잡상


이글루스에 글을 올리는 게 얼마만이지 모르겠군요. 거진 반년만입니다. 그 사이 저에게도, 세상에도 많은 일이 있었죠. 최근 심신이 자꾸만 침체되곤 하는데, 이런 느낌을 떨쳐내고 새로이 마음을 다지기 위해 이글루스 활동을 재개하고자 합니다. 첫빠따로 연초에 인도를 다녀왔을 때 들렀던 유적지 중 하나를 골라 잡설을 풀어보겠습니다.




아는 분이 건강문제로 미리 계획하신 인도관광을 못 가게 되셔서 티켓이 남게 돼 곁다리로 다녀왔죠. 참 많은 걸 구경하고 또 느꼈습니다. 개판이 아니라 소판이란 말이 어울리는 길거리(나쁜 뜻이 아닙니다.)도 그렇고, 땅덩어리도 넓고 인구도 많은만큼 종교나 종족도 남아도는데 개개의 문화가 융화되는듯 안되는듯 하면서 공존하는 양상이라던가... 가자마자 친파키스탄 계열의 완전무장 테러범 둘이 체포됐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이질감이랄까, 그런 인상을 제대로 느꼈죠. 바라나시, 강가 강, 아그라... 썰을 풀다보면 한도 끝도 없으니 한군데만 간결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 교과서 표지를 차지하고 앉은, 인도 하면 요거라는 식의 인상을 전세계에 각인시킨 건축물-바로 타지마할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인도를 한번쯤 들르신 분들이 몇 억번도 더 소개했을 물건을 구차하게 언급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역시 직접 보는 것과 문헌이나 이야기로만 아는 건 다르다는 걸 새삼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타지마할은 흔히 인간의 사랑이 어느 정도로 타오를 수 있는지 증명하는 유적으로 손꼽히곤 합니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샤자한 왕이 둘도 없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의 존재를 세상에 영원히 새겨넣겠다고 만들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죠. ...자식을 열 넷이나 낳았고, 왕비가 죽은 원인도 막내를 낳다가 몸을 상해서였기 때문이라고 하니 정말 사랑하긴 사랑했나 봅니다.
20년 넘게 온갖 난리를 쳐 타지마할(궁전 이름도 안사람 이름을 딴 거죠.)을 다 만들고는 세상에 이와 같은 걸작을 두 개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며 설계자들의 눈을 뽑고 손가락을 자르질 않나, 이번에 자기 무덤도 똑같이 세트로 만들겠다고 하질 않나... 멀쩡하던 시절엔 나름 명군이라서 왕족들과 신하들, 백성들도 다 끝나면 정신 차리겠지 싶어서 버틴 건데, 더는 장단 맞춰주기 힘들 지경이었죠. 결국 막내왕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연금했는데, 샤자한 왕도 젊은 시절 비슷한 경위로 왕좌를 차지한 걸 생각하면 이 또한 얄궂은 노릇입니다. 그리고 왕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날 때 즈음 해서 왕자에게 애걸해 연금실을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방으로 바꿔 1년 넘게 타지마할 구경만 하다 세상을 떴다죠. 
 타지마할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올랐던 게 바로 '북두의권'에 나온 서전크로스였죠. 남두육성중 한 명이었던 신이 유리아의 마음을 돌리겠다고 도시 하나를 바치다시피 했던 게 이 동네였습니다. 육성 중 하나에 불과했던 주제에 유리아의 마음을 사로잡겠다고 대책없이 막나가다보니 규모만으로 치면 당시 3대 세력 중 하나가 되기도 했으니... 징하죠, 정말. 
샤자한 왕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이 사내가 떠올랐던 것도 그럴만 했죠. 사랑 때문에 저토록 미친 짓을 하다 비참하게 몰락했으니... 게다가 시키는 대로 한 죄밖에 없는 설계자들은 왜 장애우로 만들고 난린지 원.
근데 직접 가서 보고 나니... 정말 입을 다물기가 힘들더군요. 어떻게 그 시절에 이렇게 각이 딱딱 맞는 건물을 지은 건지. 사진에서 봤을 땐, 왠지 누더기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던 건물이었는데 좀 가까이서 직접 보니 이게 오히려 모자이크 같은 양식미로 느껴지더군요. 대리석 특유의 불규칙한 결이 건물을 어느 방향에서 어떤 부분을 보더라도 다르게 보이고, 이게 부조화보단 개성을 자아내니 진짜 황당하더라고요.
이렇게 직접 목도하고 나니, 설계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사자한 왕의 심경도 나름 이해가 가더군요. 저같아도 이런 걸작과 똑같은 짝퉁이 더 생긴다고 생각하면 성질날 것 같습니다. 조지 루카스 감독도 불법복제업자들의 위법복제품을 해머로 싸그리 부서버리고 싶다고 기회될 때마다 토로하곤 하잖습니까?
덧붙여서 정말 새삼스럽지만 사랑에 미치면 어디까지 널뛸 수 있는지 확실히 배웠습니다. 영원한 사랑이나 불멸의 사랑을 운운하는 픽션이야 많지만... 그런 수준을 한참 넘어서서 광기의 증거물이라고 비난받기까지 하는 결과물이 이리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그러고보면 무굴제국의 국력이 쇠약해져 망하게 된 주요계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무덤의 건설이었다고 하니, 왠지 베르사이유 궁전과 비슷한 건물이란 생각마저 드네요. 

인도에 대한 잡상은 생각나면 다음 기회에 또 하도록 하고 이만하겠습니다. 그럼...


P.S.1 이전과 달리 VS 형식의 감상을 정리해 올릴까 생각중입니다. 
P.S.2 한달쯤 전 부모님 모시고 휴가갔다가 뜻밖의 부고를 들었고, 요사이엔 80년대의 우상 중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 다 80년대를 기점으로 상승하셨던 분들이죠. AVGN은 제왕의 죽음이 그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자신같은 세대들의 80년대가 완전히 종결된 느낌을 준다고 했는데, 저도 비슷한 심정입니다. ...떠나지 않길 비는 분들이 왜 더 빨리들 가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떠나신 분들께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덧글

  • 진주여 2009/06/30 23:01 # 답글

    잘다녀오신것같군요 ㅇㅅㅇ;
    여행기 기대하겠습니닷
  • 시엘유저 2009/07/01 01:02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잘 읽고 갑니다 (__)
    사진을 이거만 찍지는 않으셨을텐데..ㅎㅎ 후속편도 있나요?
  • deokbusin 2009/07/01 08:23 # 답글

    1.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2. 인도관광이 거의 대부분 선선한 겨울에 이루어지더군요. 여름엔 너무 더워서 그렇다는데, 정작 인도인들은 한국의 가을날씨 정도인 겨울에 바깥에서 노숙하다가 동사한다고...--;;;

    3. 타입문넷에서 코드기어스x제로의 사역마 팬픽을 번역하신 것을 읽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문제는 덧글을 달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봐도 덧글을 다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지요.ㅠ_ㅠ
  • zemonan 2009/07/01 19:08 # 답글

    진주여님//여행기는 비정기적으로 올릴 것 같습니다.
    시엘유저님//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다른 사진들도 있지만 또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deokbusin님//그간 격조했습니다. 어설프게 추워서 오히려 방비가 느슨해져서 그리 된다는군요. 한국같은 경우 하도 추워서 노숙자들이 나름 조심해서 그런 일이 적다죠. 말씀하신 팬픽은 언젠가 1부까지 포함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이름없는괴물 2009/07/11 02:47 # 삭제 답글

    아니메 감상글을 재밌게 읽고 때때로 다시 읽습니다만 여행기도 나름 오소독스하달까요? 감상글과는 또 다른 재미와 시각의 전환을 느끼게 되네요. 인도에 이은 다른 나라들의 여행기도 기대해도 되겠지요? 하아하아~(어이, 이보쇼...)

    설계자의 눈을 뽑고 손가락을 자르다...러시아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바실리성당도 비슷한 뒷야그가 있던 걸 생각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권력자들의 마인드란 별반 차이 없나 봅니다. 하하하...;;;;

    타지마할에 관련한 야그를 (수박겉핡기로나마) 알고서 방향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 폭군중 하나인 연산군과 일맥상통하는 양반이구나 싶었는데 여기서 권좌에서 쫓겨나고 그 이후 최후까지 알게 되니 동조율이 보다 더 상승하는 느낌이군요. ㅡ.ㅡ;;;

    플스2(...)에 두 사람 중 한사람 한정이긴 하지만 한마디 하자면... 코기 감상글의 덧글들 중에 딱 맞는 말이 있었지요. 사마천의 사기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의인은 고생하다 불행하게 죽고 악인은 떵떵거리며 잘 살다가 부와 권력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편안히 죽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요.... ㅠ.ㅜ
  • 알트아이젠 2009/07/11 22:14 # 답글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저도 학교에서 해외자원봉사때문에 몽골에 다녀오셨는데 인도에 다녀오셨군요. ^^
    그나저나 애니메이션외의 글에서도 zemonan님 특유의 '이것저것 인용하기'가 빛을 발하는군요. 가끔은 별로 안 좋게 보이기는한데(과연 제대로 알고 인용하는건가하고) 그래도 그게 zemonan님만의 개성이자 장점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 zemonan 2009/07/12 00:38 # 답글

    이름없는괴물님//인도만큼 기억이 선명한 곳도 찾아보기 어려워서 먼저 이렇게 올리게 됐습니다. 권력자들이란 정말... 시간과 돈이 남아돌면 그 자체가 독이라니까요. 폭군들은 어느 동네든 정례코스에서 벗어나질 못하죠. 사마천 선생의 말씀엔 적극 동감입니다. 물론 의인과 악인의 경계란 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죽지 않길 바라는 분들일수록 이상하게 일찍들 가시곤 하더군요.
    알트아이젠님//몽골에 다녀오셨군요... 아는 분 말씀에 따르면 우리나라랑 비슷하면서도 틀린 재미가 있다고 하시던데 어떠셨는지요? 타지마할을 보면서 느낀 잡상이 이 모양이니 덕후는 죽어도 덕후인 모양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