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30일
근황보고를 가장한 타지마할 잡설
이글루스에 글을 올리는 게 얼마만이지 모르겠군요. 거진 반년만입니다. 그 사이 저에게도, 세상에도 많은 일이 있었죠. 최근 심신이 자꾸만 침체되곤 하는데, 이런 느낌을 떨쳐내고 새로이 마음을 다지기 위해 이글루스 활동을 재개하고자 합니다. 첫빠따로 연초에 인도를 다녀왔을 때 들렀던 유적지 중 하나를 골라 잡설을 풀어보겠습니다.
아는 분이 건강문제로 미리 계획하신 인도관광을 못 가게 되셔서 티켓이 남게 돼 곁다리로 다녀왔죠. 참 많은 걸 구경하고 또 느꼈습니다. 개판이 아니라 소판이란 말이 어울리는 길거리(나쁜 뜻이 아닙니다.)도 그렇고, 땅덩어리도 넓고 인구도 많은만큼 종교나 종족도 남아도는데 개개의 문화가 융화되는듯 안되는듯 하면서 공존하는 양상이라던가... 가자마자 친파키스탄 계열의 완전무장 테러범 둘이 체포됐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이질감이랄까, 그런 인상을 제대로 느꼈죠. 바라나시, 강가 강, 아그라... 썰을 풀다보면 한도 끝도 없으니 한군데만 간결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타지마할은 흔히 인간의 사랑이 어느 정도로 타오를 수 있는지 증명하는 유적으로 손꼽히곤 합니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샤자한 왕이 둘도 없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의 존재를 세상에 영원히 새겨넣겠다고 만들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죠. ...자식을 열 넷이나 낳았고, 왕비가 죽은 원인도 막내를 낳다가 몸을 상해서였기 때문이라고 하니 정말 사랑하긴 사랑했나 봅니다.
20년 넘게 온갖 난리를 쳐 타지마할(궁전 이름도 안사람 이름을 딴 거죠.)을 다 만들고는 세상에 이와 같은 걸작을 두 개 이상 있을 필요가 없다며 설계자들의 눈을 뽑고 손가락을 자르질 않나, 이번에 자기 무덤도 똑같이 세트로 만들겠다고 하질 않나... 멀쩡하던 시절엔 나름 명군이라서 왕족들과 신하들, 백성들도 다 끝나면 정신 차리겠지 싶어서 버틴 건데, 더는 장단 맞춰주기 힘들 지경이었죠. 결국 막내왕자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연금했는데, 샤자한 왕도 젊은 시절 비슷한 경위로 왕좌를 차지한 걸 생각하면 이 또한 얄궂은 노릇입니다. 그리고 왕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날 때 즈음 해서 왕자에게 애걸해 연금실을 타지마할이 잘 보이는 방으로 바꿔 1년 넘게 타지마할 구경만 하다 세상을 떴다죠.




덧붙여서 정말 새삼스럽지만 사랑에 미치면 어디까지 널뛸 수 있는지 확실히 배웠습니다. 영원한 사랑이나 불멸의 사랑을 운운하는 픽션이야 많지만... 그런 수준을 한참 넘어서서 광기의 증거물이라고 비난받기까지 하는 결과물이 이리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그러고보면 무굴제국의 국력이 쇠약해져 망하게 된 주요계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무덤의 건설이었다고 하니, 왠지 베르사이유 궁전과 비슷한 건물이란 생각마저 드네요.
인도에 대한 잡상은 생각나면 다음 기회에 또 하도록 하고 이만하겠습니다. 그럼...
P.S.1 이전과 달리 VS 형식의 감상을 정리해 올릴까 생각중입니다.
P.S.2 한달쯤 전 부모님 모시고 휴가갔다가 뜻밖의 부고를 들었고, 요사이엔 80년대의 우상 중 한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 다 80년대를 기점으로 상승하셨던 분들이죠. AVGN은 제왕의 죽음이 그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자신같은 세대들의 80년대가 완전히 종결된 느낌을 준다고 했는데, 저도 비슷한 심정입니다. ...떠나지 않길 비는 분들이 왜 더 빨리들 가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새삼스럽지만 떠나신 분들께 조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 by | 2009/06/30 22:51 | 오만잡상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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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기대하겠습니닷
사진을 이거만 찍지는 않으셨을텐데..ㅎㅎ 후속편도 있나요?
2. 인도관광이 거의 대부분 선선한 겨울에 이루어지더군요. 여름엔 너무 더워서 그렇다는데, 정작 인도인들은 한국의 가을날씨 정도인 겨울에 바깥에서 노숙하다가 동사한다고...--;;;
3. 타입문넷에서 코드기어스x제로의 사역마 팬픽을 번역하신 것을 읽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문제는 덧글을 달고 싶은데 아무리 뒤져봐도 덧글을 다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지요.ㅠ_ㅠ
시엘유저님//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다른 사진들도 있지만 또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deokbusin님//그간 격조했습니다. 어설프게 추워서 오히려 방비가 느슨해져서 그리 된다는군요. 한국같은 경우 하도 추워서 노숙자들이 나름 조심해서 그런 일이 적다죠. 말씀하신 팬픽은 언젠가 1부까지 포함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설계자의 눈을 뽑고 손가락을 자르다...러시아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바실리성당도 비슷한 뒷야그가 있던 걸 생각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절대권력자들의 마인드란 별반 차이 없나 봅니다. 하하하...;;;;
타지마할에 관련한 야그를 (수박겉핡기로나마) 알고서 방향은 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 폭군중 하나인 연산군과 일맥상통하는 양반이구나 싶었는데 여기서 권좌에서 쫓겨나고 그 이후 최후까지 알게 되니 동조율이 보다 더 상승하는 느낌이군요. ㅡ.ㅡ;;;
플스2(...)에 두 사람 중 한사람 한정이긴 하지만 한마디 하자면... 코기 감상글의 덧글들 중에 딱 맞는 말이 있었지요. 사마천의 사기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의인은 고생하다 불행하게 죽고 악인은 떵떵거리며 잘 살다가 부와 권력을 자식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고 편안히 죽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고요.... ㅠ.ㅜ
그나저나 애니메이션외의 글에서도 zemonan님 특유의 '이것저것 인용하기'가 빛을 발하는군요. 가끔은 별로 안 좋게 보이기는한데(과연 제대로 알고 인용하는건가하고) 그래도 그게 zemonan님만의 개성이자 장점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알트아이젠님//몽골에 다녀오셨군요... 아는 분 말씀에 따르면 우리나라랑 비슷하면서도 틀린 재미가 있다고 하시던데 어떠셨는지요? 타지마할을 보면서 느낀 잡상이 이 모양이니 덕후는 죽어도 덕후인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