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기어스 - 반역의 를르슈

이 작품의 주제는 본편의 전반부에서 다 나옵니다. 타니구치 감독이 그동안 만든 작품들에서 외쳐왔던 주제들의 종합세트인 동시에 그동안 쌓아온 연출의 정수를 한껏 압축해서 보여주더군요.




제레미아와 아냐의 싸움은 외부의 거대한 힘-왕의 힘에 의해 추락당하고 변질된 자들의 싸움입니다. 그토록 오락가락하면서도 절대가치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채 버텨 온 사내와 불분명한 기억 때문에 무엇 하나 온전히 믿질 못하고 다른 누군가를 한 번도 주군으로 모시지 않은 채 기록만을 믿는 소녀. 비슷하면서도 정반대되는 자들의 싸움이었죠.


제레미아도 그런대로 순탄하던 인생에서 뜻밖의 돌발사태들로 온갖 수모와 혼란스러운 갈등에 직면했죠. 그리고 자신을 영락시켰던 주체의 진실을 통해 정체성을 되찾았고요. 그런 과거 때문에 아냐가 자신처럼 기어스로 인해 망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한 순간, 동병상련이 들어 캔슬러를 쓴 게 아닐까요? 자신의 일부이자 충의를 체현시켜준 분신을 망설임 없이 부수며 맨몸으로 결정타를 가하는 행동도 그 자신의 삶과 사고방식을 제대로 받혀주죠.

갈수록 사고방식이나 폼 잡는 게 주군을 닮아가더니 역전을 통해 개작살내려던 상대의 진실을 알게 되어 돕는 거 보세요. 를르슈가 자신에게 했던 짓을 고대로 반복한 셈이죠. 그렇게 생각하면 예전에 사내가 그랬듯 아냐가 그를 따르게 된 것도 납득이 가요. 빚을 갚고 싶기도 했겠죠.


하지만 전반부의 핵은 역시 카렌과 스자쿠의 대결이었죠. 배경의 11이란 숫자는 똑같이 일레븐이란 위치에서 출발해, 브리타니아 인으로 살 수 있지만 일본인이길 고집하는 처자와 브리타니아인이 되려한 청년의 엇갈린 양상을 강조한 미장센입니다. 스자쿠는 새삼 1인칭을 오레(俺)로 바꾸며 결심의 순도를 내비치죠.


둘이 대결을 시작하며 천천히 서로에게 있어 대표적인 무기를 들어 상대를 겨누는 게 긴박감을 조이죠.



사실 개나 소나 플로트로 날아다닐 때부터 전투가 영 싱거워졌는데, 땅위에서 열심히 뛰고 구를 때랑 달리 다들 몸 사리고 게으름을 피우더군요. 그래서 저번 편 말미에 간만에 실내전이 벌어져 기대했는데, 그냥 지나가다시피 해 실망스러웠죠. 그러나 홍련과 란슬롯은 공중전을 벌이다가도 다모클레스에서 육박전을 벌이며 버라이어티하게 놉니다. 전술과 성능의 격도 장난이 아닌데, 이전과 달리 복사파동을 MVS2개로 막는 잔재주와 파동포를 튕겨낼 정도로 강력해진 실드를 보세요. 더욱이 싸움이 계속되면서 파손이 늘고 장비가 떨어짐에 따라 점점 맨몸이 되가는데 그와 함께 싸움방식도 점점 옛날로 돌아갑니다.


둘이 파이프 사이에서 재주부리며 싸우는 양상은 나리타의 첫 대결을, 그리고 서로의 특기인 돌려차기와 스트레이트로 부딪힌 직후, 스자쿠가 카렌의 주먹을 맞고 하켄으로 반격하는 것은 신주쿠의 조우전을 연상시키죠.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카렌의 아슬아슬한 승리로 끝났다는 점인데, 전시리즈 내내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인 맞수의 결말이 난 거죠.

언제나 조금씩 밀리던 카렌이 기어스의 저주로 업그레이드 된 스자쿠를 피나는 노력과 의지로 쓰러뜨린 결과는 기어스로도 인간의 의지는 결코 근원까지 파괴 못한다는 비유랄까요, 거대한 힘이나 시스템에 속해야만 스스로의 정당성을 얻는 청년과 시스템에 항상 자신의 의지로 맞서던 처자의 사고차이가 잘 반영된 대결이었죠.



이 둘의 싸움은 스크라이드의 라스트 매치에 대한 오마쥬이기도 합니다. 체제에 저항하는 아웃사이더와 질서를 존중하는 인사이더, 한쪽으로 치우친 힘과 균형 잡힌 기술의 충돌, 모든 걸 쏟아내며 맨몸이 되다시피 한 개싸움... 특히 마지막에 카렌이 견제병기까지 동원해 최후의 철권을 날린 건 카즈마의 마지막 공격과 흡사하더군요. 아슬아슬한 승리도요.

카렌이 지노에게서 싸움을 인계받고 끝난 후 그의 구조를 받는 것도 달리 보입니다. 당시 카즈마의 성우가 바로 지노를 연기하신 호시 선생이었죠.

이 싸움에 맞추듯 다른 인물들도 싸움 속에서 망신창이가 되 가며 일체의 잔가지들을 벗어던지고 싸움을 시작한 이유를, 지금에 이르게 된 근원을 되짚습니다. 다 같이 자기들만의 시작지점으로 돌아가고 있는 거죠.

아직 전장에서 버팅기는 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나눈 대화가 교차하며, 하나의 합을 이루는 게 묘하더군요. 그들이 처한 상황의 모순과 대립되는 위치, 그리고 그로 인해 오히려 너무도 닮아버린 그네들의 종착역이 느껴져서요.


아냐가 제레미아를 약한 남자라고 비하한 순간, 그와는 반대로 거대한 권위에 저항중인 토도가 오기를 부리는 장면으로 이어지고, 그가 위에 서는 사람으로써의 책임을 언급한 직후 나나리는 오래비의 권위를 부정합니다. 그리고 다시금 카렌과 스자쿠, 토도와 치바에게 이어지는데... 지금은 돌아선 를르슈와 카렌, 토도가 저항의 필요성과 시스템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이란 것은 이 지경에 와서도 그네들의 본질적인 바탕이 같다는 걸 새삼 가르쳐주죠.


스자쿠도 나름 한스럽죠.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들도 힘들지만, 시스템 속에서 살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고통스럽기는 매한가지인 겁니다.  


토도는 만류하던 치바를 때리려다가 그만두는데,
‘네가 그러고도 군인이냐?’라고 질책하려 했겠죠. 곧이어 자신은 이런 식으로밖에 살 수 없다고 하며, 성각도 천자에게 그리 대답하는데 이 두 녀석은 결국 를르슈랑 다를 게 없는 고집불통이란 점을 재차 보여줍니다.

이 직후부턴 전장에서 한 발 먼저 퇴장해야 했던 자들이 더욱 짙게 뒤를 돌아보는 회한이 이어집니다. 


코넬리아의 말은 원래 싸움이 길어지면 그 싸움을 시작한 동기와 바탕은 바래지고 오직 생존욕과 적의만이 남는다는 잔인한 진실을 가리키며, 비렛타와 오우기는 그런 와중에도 이 모든 여정이 결국 자신을 긍정하고 설 자리를 지키고자 한 것이란 점만큼은 잊을 수 없다고 되뇌이죠. 그럼에도 오우기는 죽은 멘토에게 묻습니다. 이 싸움을 긍정해도 되는지 말이죠.



이 직후 로이드는 전쟁을 통해 얻는 것도 분명 있지 않느냐 하고, 락시아타는 인간과 기술이 부딪히면 안전을 우선시하는 사람답게 이를 부정합니다. 이들과 달리 아직 확실한 자기만의 답을 내지 못한 니나와 세실은 그저 할 수 있는 바를 했을 뿐이라고 대답하고요.



그리고 락시아타의 지적을 타마키가 이어가는데, 늘 그렇듯 단순하면서도 확실하게 상황을 요약해주죠. 인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조금씩 자기 원 밖을, 분수이상을 지향합니다. 그렇게 한계를 넘고자 하는 몸부림이 곧 싸움으로 이어지는 거고요.

마녀는 인간의 역사가 곧 투쟁의 역사임을 안다고 말하며, 전장의 밖에서 아수라장을 또 다시 보면서 오랜 세월 쌓인 회한을 내비치죠.   


카구야는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를르슈를 위해서라도 얌전히 몸 사리라고 권하는데요, 이전에 를르슈가 방황했을 때 C.C.조차 돌아올지 확신을 못하는 상황에서 카구야는 유일하게 를르슈를 믿었고, 또한 자신이 은근슬쩍 파트너가 무너지지 않을 거라 기대했다는 걸 들킨 적이 있죠. C.C.의 평가는 이때 일을 상기했기 때문일까요. 그녀는 카구야의 그런 성향을 떠올리면서 파트너가 하고자 하는 일이 그릇된 게 아니란 걸 확인했던 건지도 모릅니다.

이런 그네들을 보면서 참으로 사랑스런 막무가내들이란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애처로운 구제불능들입니다.



 오래비와 누이의 첫 싸움 그리고 마지막 싸움




언젠가 뜨일 누이의 눈을, 언젠가 다시금 오래비의 얼굴을 제일 먼저 보고 싶었던 남매는 얼굴도 눈도 너무나 변해버렸죠. 피차 살인자가 됐다는 누이의 말이 안쓰럽더군요.
를르슈는 스스로에게 마지노선인 누이에게 왕의 힘을 써야할지 고심합니다. 이 직후 폭음이 두 번 터지는 건 남매의 진심이 충돌하는 걸 받혀주는 연출이며, 전장의 폭음은 계속해서 밖의 난리통 못지않은 격렬한 대립을 받혀주죠.



나나리가 있는 공중정원의 세트를 보면 마치 날개나 나비문양 같은 장식으로 넘쳐나더군요. 그녀의 나비브로치와 를르슈의 기어스에 대한 은유랄까요. 남매의 대화가 시작될 무렵엔 새 6마리가 날아가는데 이는 2기엔딩 삽화에서 나왔던 그 새들이죠. 또 다시 소중한 존재를, 마음을 떠나보내야 할 순간이 온 겁니다. 후반의 결말을 생각하면 를르슈 자신이 새가 된 셈이죠...


두 나비가 교차하듯 엇갈리는데, 이 또한 남매의 마음을 드러내는 연출입니다.


를르슈가 다모클레스를 언급하는 순간, 정원의 천장에 매달린 자폭용 프레이야가 남매를 굽어보듯 비춰지는데, 인간을 강제로 제어하는 신의 힘을 표상한 것이죠.


나나리와 를르슈는 간만에 왕이 아닌 남매로써,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이야기를 나눕니다만, 이전처럼 서로를 아끼는 말이 아니라 1년 반 전까지만 해도 서로를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감춰뒀던 말을 쏟아내는 게 가슴 시리더군요. 그 때문인지 를르슈는 치졸하게 또 누이를 핑계로 삼습니다. 1년 전까지 그에게 투쟁의 근원과 진실은 그것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는 결국 나나리가 부정하면 간단히 아작날 핑계였죠.


그의 변명이 아주 억지는 아니었습니다. 배경설정에 따르면 밀레이의 할아버지와 달리 그녀의 부모님들은 가문을 부흥시킬 의지가 너무도 강했고, 램플지 남매도 눈엣가시로 여겼으며 적당히 팔아버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답니다. 를르슈는 이를 슬쩍 눈치 채고 있었으며, 위험한 노름체스를 거듭했던 건 하루빨리 자산을 모아 나나리를 데리고 튀려 한 탓이었다죠. 이를 위해 주식과 적금도 했고요. 근데 나중에 흑기사단을 결성하게 되는데, 아직 기어스로 돈을 왕창 강탈하기 전인데다, 키리하라의 지원을 약속받지 못한 상황이라 기사단의 초기 활동자금은 요렇게 모은 자금을 쓴 거라죠. 혹자는 결국 초기에 기사단을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준 건 를르슈였던지라 이놈들의 모반이 더욱 괘씸해진다고 하더군요.


를르슈는 얄궂게도 누이의 성장을 확신한 순간, 기어스를 씁니다. 물론 이는 나나리의 자폭을 막기 위한 선제공격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슈나이젤의 냉혹한 계획을 알면서도 동의한 이면에는 오빠를 향한 책임감 말고도 나름대로 세계를 위한 소신이 있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죠.

만약 나나리가 어디까지나 누이로써 자신을 막기 위해 싸워온 것이었다면, 이는 그녀가 자신에게서 아직껏 온전히 떨어지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얼마 후 실현시킬 계획을 생각하면 나나리는 자신을 증오해서라도 버텨나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나나리는 진즉에 오래비만을 생각하는 누이에서 어엿한 인간으로써 일어선 후였고, 더 이상 불필요한 잔소리나 성장을 위한 질책 내지는 보듬기 따윈 필요 없었죠. 자신과 대등한 ‘인간’이란 걸 그제서야 확신했기에 졸렬한 언사가 아니라, 증오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힘’으로 스위치를 빼앗았던 겁니다. 더욱이 자신이 지려고 했던 십자가를 굳이 그녀에게 안겨줄 필요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죠.



나나리가 기어스에 걸려 스위치를 넘길 때, 말투와 목소리가 화목하던 시절을 연상시킨지라 씁쓸하더군요.



를르슈는 나나리에게 기어스를 써야했던 것은 사과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녀가 이만큼 큰 것에 감사하는데, 고개를 숙인 이유는 그런 감사와 자신과 달리 진정으로 왕이 될 자격을 갖춘 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그렇게 를르슈는 자신의 누이로부터 마침내 독립하기에 이릅니다.


기어스로 의식을 잃은 사이에 마지막으로 진심을 표한 직후, 오래비는 다시금 마왕의 가면을 쓰며 비웃죠. 나나리는 그때까지도 아무리 타락했다 한들 오래비가 자신에게 한해서 결단코 선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 기어스는 를르슈에겐 자신과 누이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서로에게서 독립하기 위한 통과의례였던 게 아닐까요.


자신을 막으려다 넘어진 누이를 무표정하게 돌아보더니, 돌아선 직후 울음을 터뜨릴 뻔하다가 곧 있을 의식을 위해 표정을 가다듬는 게 슬펐습니다.
‘세상만인이 손가락질을 해도 그 사람에게만큼은...’ 하는 존재가 있기 마련인데 말이죠. 를르슈에게도, 나나리에게도요...



 마신의 강림




 마왕의 손에 드디어 신의 힘마저 쥐어집니다. 이에 기사단을 비롯한 전 세계가 절망하죠. 다모클레스는 나이트메어나 공중기함들조차 접근할 수 없는 성층권바깥에 도달하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를르슈와 스자쿠도 결전을 서둘렀었죠. 결국 다모클레스의 임계고도 도달 자체가 마지막 체크 메이트였던 겁니다.

친구가 말 그대로 마신이 된 순간, 리발과 밀레이는 그의 완전한 타락에 절망하고 맙니다.


검은 왕이 거대하게 비춰지는 게 인상적인데, 세계에 체크메이트를 선포한 거죠. 특유의 손동작과 장기말을 겹쳐놓고 생각하니 말 그대로 세계라는 장기판위에 말을 놓는 듯한 기분마저 들더라고요.



를르슈의 기어스가 강림한 순간, 지도의 색이 보라색으로 바뀌는데, 보라색은 절망을 뜻하는 색이며, 젊은 황제가 가장 좋아하는 색상인 동시에 그 자신의 눈동자 색깔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자신의 색으로 물들여버린 거죠. 마치 기어스에 걸렸을 때, 눈동자가 붉어지던 현상이 연상되더군요. 말 그대로 누구도 거역 못할 절대적인 기어스가 세계 그 자체에 새겨진 동시에 이는 최후의 진혼곡이 울려퍼집니다.

를르슈가 늘 호언했던 대로 세계를 손에 넣은 순간, 어두운 희열감을 느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군요. 이번 아이캐치는 하얀 색인데, 더욱이 이전까지와는 달리 를르슈가 세계에 기어스를 건 상태에서 넘어가는 게 인상적입니다.

한 소년의 싸움이 시작된 곳에서 사내의 여로가 막을 내리는 의식이 행해지는데, 제로가 처음으로 민중들 앞에 나선 것도 바로 이런 행렬식이었죠. 제로가 가져올 마지막 파괴의 무대이기도 했던 거죠.


굳이 공개처형을 고집한 대외적인 이유는 권위선전 및 반동분자들에 대한 본보기, 그리고 남은 떨거지들을 유인하기 위함이었겠죠. 실제로 흑기사단과 슈나이젤 측의 찌거기들이 현장 근처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요.

슈나이젤의 경우 아주 걸레짝을 만들어놨는데, 저놈의 대형사슬은 또 뭔지.


를르슈는 지 애비마저 초월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과시하는데, 어찌보면 신기록 하나 세운 셈이군요. 선대 황제와는 달리 브리타니아인들마저 노골적으로 적의를 쏟아내며, 편파방송을 당연하다는 듯하던 방송국직원들마저 치를 떨고, 밀레이는 아주 보기 싫다는 듯 돌아서버리죠. 오우기를 본 비렛타가 한 번은 어떻게 넘겼어도, 두 번은 도저히 넘기지 못해 뛰쳐나가려는 게 알싸하더군요.



로이드 팀은 투항하자마자 전세역전으로 정치범 신세가 되는데, 락시아타의 말대로 실소가 나올 법도 하지만, 이 모든 것도 를르슈의 지시였고 또 안배였죠.

잡혀 들어온 두 팀을 가만 보면 감방 안에서조차 평소 성격이 드러나더군요. 락시아타는 여유 있게 앉고, 세실은 조신하게, 니나와 로이드는 궁상 떨고, 사요코는 정좌합니다.

과학과 기술발전에 대해 두 사람이 진화와 진보라 구별짓는 이유는 로이드가 인간을 과학의 일부로 보고, 락시아타는 과학과 인간을 엄연히 별개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로이드와 락시아타의 싸움에 대해 이 또한 새로운 출발점이었다는 세실의 평가는 좀 있다 재회할 또 다른 콤비를 이르는 말이기도 했죠.



제로가 나타났을 때의 를르슈 표정이 아주 오스카 상감이더군요. 제레미아가 만류한 이유는 삑사리로라도 맞으면 곤란하기 때문이며, 잡놈들을 말리고 직접 발판마저 제공합니다.



카렌과 나나리를 제외하고 제로의 정체를 가장 먼저 확신한 것은 토도였는데, 제로의 동작을 보고 짐작한 것이죠. 이전에 스승이었고, 전장에서 지겹게 맞붙었던 청년이니까요.



 Re;




 본편의 부제가 무엇을 뜻하는지 분분했는데, ‘Zero Requiem’의 Re가 가장 확실한 뜻이었습니다. 제로(를르슈)의 장례식이며, 제로(스자쿠)에 의한 사형집행인 동시에, 제로(재시작)를 위한 장송미사였던 것이죠.

그러나 이는 제로의 귀환(Return), 그의 마지막 반역(Rebellion), 를르슈의 마지막 결론이자 대답(Reply), 반역자와 압제자의 운명역전(Revolve), 복수(Revenge), 구세주의 부활(Resurrection), 새로운 시작(Restart)... 등등 여러 단어의 머릿글자이기도 하며, 사실 뭐든지 갖다 붙이기 편한 머릿글자긴 하죠. 그러나 이렇게 연상되는 단어들은 본편의 내용과 두 친구의 생애가 고스란히 압축하더군요.



아서는 처형행진이 아니라 스자쿠의 무덤을 지키는데, 아마도 자신을 돌봐주던 청년과 그의 친구가 겪을 종말을 미리부터 애도하고 있던 건 아닐까요.

게임에서 C.C.는 트라우마 때문에 교회가 불편하다고 토로하더군요. 자신에게 지긋지긋한 운명을 물려줬던 수녀와 신을 증오하던 그녀가 교회를 찾아 기도하는 게 안쓰럽더라고요. 그녀가 반려자의 임종을 피한 것은 차마 지켜 볼 수 없던 탓도 있겠지만, 자신이 그 자리에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막아설지도 몰랐기에, 그의 의지를 무시하게 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얼마나 처절한 배려였던가요. 그녀는 아마도 두 친구가 함께 종말을 맞이할 때 조금이나마 고통이 덜하기를, 자신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빌려달라고 신에게 기원했던 거겠죠.


애저녁에 내린 결론임에도 스자쿠는 다시 한 번 되묻습니다. 너무도 죽이고 싶었던 친구놈을 죽일 기회를 잡은 데다, 필요한 일이었지만 를르슈보다 이 친구가 외려 약간의 미혹을 보이는 게 참... 생각해보면 를르슈는 나나리가 죽었다고 생각한 후, 부모를 날려버렸을 때 삶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날아가다시피 했죠. 황제가 되고 일을 진행해나가면서 퍼포먼스나 언행, 의상이 한층 괴악스럽게 요란해진 것도 어쩌면 나름대로 죽음에 대한 불안을 삭히고자 하는 반동심리가 아니었을까요?

23화에서 스자쿠가 정신 차리라고 했던 말은 똑바로 죽을 생각이나 하란 뜻이었던 겁니다. 를르슈가 당시에 나나리의 생존을 확인하고 뒤집어지려 했던 것은 단순히 누이가 적으로 돌아선 탓만이 아니라 다시금 살고 싶다는, 그저 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도망가 버리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친 탓일지도 모르죠. C.C.가 행동의 결과에서 물러나라고 촉구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종용했던 게 아닐까요.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놈을 찔렀거늘... 스자쿠는 결국 반신을 찌른 순간 눈물을 터뜨리고 맙니다. 생각해보면 그에게 얼마나 잔인한 순간이었던가요. 이전에 전쟁을 막겠답시고 반쯤 실수로 아버지를 찔렀던 그가 똑같은 업을 행해야 했으니... 를르슈는 정말 잔인한 놈입니다.



사쿠라이 선생은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었죠. 자신과 달리 거짓된 관계나마 항상 주변에 사람이 드글드글대고, 언제나 자신보다 목적에 한 발 앞서 다가서는 데다, 일본해방을 자기보다 먼저 할까봐 조마조마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죠. 철부지였던 스자쿠는 혼자서 집안일은 물론이고 동생양육까지 죄다 해내는 를르슈를 보면서 열등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아버지 노릇을 못했던 겐부가 죽은 상황에서 토도도 그를 어쩌지 못했을 때, 를르슈가 말했죠. 타인을 위해서만 살겠다면 내가 네 삶의 이유를 만들어주겠다고요. 세월이 흐른 후, 를르슈의 행각을 보면서 스자쿠는 아버지의 비행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다시금 같은 죄를 강요하다니...


더욱이 그토록 죽음이란 벌을 찾아 헤메던 자신이 쿠루루기 스자쿠로써 당당히 죽을 기회마저 앗고, 그것도 그토록 부정하고 증오하던 제로가 되어 유피의 총살과 흡사한 공개처형을 행한 후, 인간이 아닌 상징으로써 살아가라고까지 하는데, 를르슈의 말대로 이는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벌을 원하던 자에게 가장 받기 싫었던 ‘삶’을 한껏 비틀어서 짊어지게 한 거죠.



이는 를르슈가 이전에 걸었던 기어스와 같으면서도 훨씬 잔인한 주박이었습니다. 그는 뒤틀린 형태로나마 친구가 누이와 함께 살아가길 빌었던 거죠.


끝도 없이 반대되는 길을 걷던 두 소년은 서로의 운명과 업보를 교환하면서 청년이 됐습니다. 이 짝패들은 어느 한쪽이 먼저 죽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죽을 때도 함께 떠나야 할 처지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더군요.



두 개의 죽음을 합쳐 하나의 생명을 만든 우리는 신이다!!

From 신의 아들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도 쿠루루기 스자쿠도 이렇게 죽고... 제로라는 덧없는 ‘신’만이 남은 겁니다.



 손길과 말, 그리고 회귀




 를르슈가 핏자국을 남긴 가면의 왼쪽 렌즈는 이전에 기어스의 붉은 문양을 발동시킬 때 열리던 바로 그 부위였습니다. 를르슈는 이렇게 새로운 기어스를 한 때 자신의 페르소나였던 가면과 이를 물려받은 후계자에게 각인시킨 겁니다.     


이는 이전에 나나리가 해줬던 위로와 같은 행위기도 했죠. 를르슈는 가면 속에서 친구가 울고 있을 거라는 걸 훤히 알고 있었으니까요.




원체 손의 움직임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만, 그중에서도 인물들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 많죠. 유피와 나나리, C.C.가 를르슈에게 손을 내뻗던 순간은 거의 정확하게 일치할 정도고요. 그에게 있어서 모든 가식을 털어내고 상대방을 받아들이던 순간에 행하던 악수들...

1기 오프닝에서도 2기 오프닝에서도 청년은 높은 곳에 있는 뭔가를 갈구하며 항상 손을 내뻗었죠. 하지만 그가 진실로 잡고 싶었던 것은 바로 사랑했던 사람들의 손이 아니었을까요.

마지막 순간에 누이는 그의 손을 잡으며 처음으로 모든 걸 이해합니다. 짧은 평생 동안 누구에게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던 청년은 마지막에서야 진실로 바랬던 소원 중 하나를 이뤘던 겁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처참하고 슬펐던 순간은 를르슈가 칼에 찔렸던 순간이 아니라, 브리타니아 국기에 피로 십자가를 그리며 추락한 순간, 그의 시점에서 나나리의 얼굴이 내려오듯 가까워질 때였습니다. 너무도 급작스런 사태에 모든 감정이 날아가다시피 한 누이의 표정이 한없이 슬프더군요.


를르슈는 나나리를 가장 가까운 곳에, 제일 처절한 형태로 묶어뒀는데, 이는 훗날 황위를 이을 때를 위한 조치였죠. 그녀가 를르슈의 친동생이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을 터, 만약 그녀만 따로 봐주는 식의 대우를 하면 그 자체가 흠집이 됩니다. 허나, 그녀야말로 자신에게 대적하던 집단의 수장이었던 고로 유독 지저분하게 처우했다는 걸 이토록 부각시켜야 자신의 악질성이 더욱 강조되는 동시에 훗날 그녀가 황위를 물려받을 때 군말이 나올 여지가 사라지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를르슈가 최후의 순간에 그나마 가장 가까이 두고 싶었던 존재였기에 자신의 처형대 바로 앞에 그녀를 위치시킨 거겠죠.



를르슈가 항상 했던 말이 지켜진 셈인데, 돌이켜보면 참 말이랄까 대사가 넘쳐나는 작품이었으며, 기가 막히게도 참 많은 말들이 실현됐더군요. 저주든 축복이든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스자쿠가 친구에게 ‘
너의 악의로 세상을 구원해봐!!’라고 했던 거나, ‘내가 너의 살아가는 이유가 돼줄게’, ‘악이 되어 더 큰 악을 없애리라!’라고 했던 를르슈의 말이나... 길포드가 장난처럼 내뱉었던 오렌지농장이야기마저 마지막에 실현되고 말았죠.


를르슈의 저 한마디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잠언이었죠.


를르슈는 주마등을 보며 과거로 돌아가는데, 마지막에 본 것은 바로 어린 시절의 친구와 누이, 그리고 자기자신이었습니다.

그 직후 마지막으로 태양을 보는데... 이 태양이 마치 C.C.나 라그나뢰크의 접속에서 나온 재창조의 섬광과 흡사합니다. 그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세상을 재창조했다는 뜻이며, 동시에 그는 이전에 친구들과 약속했던 불꽃놀이를 떠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가 태양을 보고 있었던 이유는 나중에 드러납니다만.



 의식




 생각해보면 그토록 이를 갈던 스자쿠나 니나가 그에게 협조했던 것도 나름대로 이해가 가요. 어찌 보면 더 이상 없을 정도로 비참한 처형식이었으니까요.


제로가 브리타니아인에게도 만세세례를 받는 게 황당한데, 유피를 죽여서 분열됐던 일본인들의 벡터를 하나로 만들었듯, 이번에는 브리타니아인들과 일본인들을 비롯한 비제국인들의 공조를 이끌어낸 셈입니다.


은혈의륜님의 지적대로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의식살인에 가까웠습니다.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를르슈가 죽었을 때, 피와 국기가 십자가를 이루는 장면도 그렇지만, 그의 죽음이 지닌 본질을 가장 먼저 완벽하게 이해한 것이 나나리와 카렌이란 점도 의미심장하죠. 예수의 죽음을 어머니였던 마리아와 제자였던 막달라가 지켜봤던 것처럼 그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고, 가장 먼저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한 것이 바로 를르슈에게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소녀와 그를 멘토로써 존경하던 처자였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는 특정종교를 본 땄다기보다는 근본적인 집단의식에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프레이져의 제왕살해의식을 들 수 있습니다. 고대에 왕은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힘을 지닌 신적인 존재였기에 왕이 쇠하기 전에 보다 젊고 강력한 후계자로 하여금 왕을 죽이게 하여 신의 힘을 계승시킨 후, 새로운 왕을 옹립하는 의식을 치렀다죠. 를르슈도 세상을 거듭나게 할 신적인 존재로써 자신의 친구를 지목했던 겁니다.

를르슈의 죽음을 통해 세계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는 게 바로 이와 상통한다 할 수 있죠.


그리고 또 하나는 지라르의 초석론인데, 흑기사단이 19화에서 를르슈에게 모든 사태의 책임을 갖다 박았던 것처럼, 현 상황의 불만을 희생돼도 싼 존재를 만들어 해소시키는 방식입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보통 이런 식으로 초석이 된 존재가 작살나는 걸 보며 카타르시스를 행해 집단의 위기를 넘긴 조직체가 희생양을 숭고한 존재로 격상시키곤 하지만, 를르슈는 후대에까지 철저하게 난도질당해갔다는 점이죠.



를르슈의 죽음을 보다보면 ‘눈물을 마시는 새’의 권능왕이 떠올라요. 사람들이 생각해낼 법한 모든 악덕을 저질러, 쳐 죽여 마땅한 인물이 되었고, 혐오와 증오의 만장일치 속에 희생양이 되어야 했으며, 그렇게 왕의 죽음을 경험한 나라가 부활의 힘을 얻어야 했는데, 그 상황에서 곧바로 사라진 탓에 멸망에 확인사살을 찍은 왕이죠. 를르슈는 악역황제라는 칭호아래 권능왕이 못한 일을 해치운 셈입니다.      

종당에 이르러서야 를르슈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눈물을 마셨으며, 죽음을 통해서 진실한 ‘왕’이 됐던 거죠.


왕의 힘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던 마녀의 평가는 왕 본인만이 아니라, 그가 다스리는 자들과 주변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었죠. 그 말에 합당하게 물귀신마냥 주변사람들마저 영락시켜가던 를르슈는 마녀에게서 부여받은 힘이 아닌, 자신만의 기어스로 공존의 기회를 열고, 그의 지인들로 하여금 그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관점에 따라선 왕의 힘조차 넘어선 행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기회의 선사




 유래가 없는 압제자에게 대항하던 자들을 구할 여력이 사라지고, 남은 자들도 너무나 비력한 상황에서 그네들이 한 번 내다버렸던 지도자가 재차 그들을 구해주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 그 자체였죠.

제로 레퀴엠은 이때까지 제로가 대중의 면전에서 행했던 공개적인 활약상의 총합체였습니다. 처음 그가 데뷔했을 때 스자쿠를 끌고 가던 제레미아가 이번에도 를르슈를 모시며 삽질담당을 떠맡게 되고, 잡힌 동지들의 구출은 2기 4화의 단독 밥상뒤집기를, 미친 폭군을 죽이고 환호 속에 그를 대신할 새로운 구세주로 제로가 추앙되는 것은 유피를 죽이고 일본인들을 결집시키던 순간과 똑같죠.


를르슈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건 아닐까, 하는 점은 많은 분들이 예측했던 사항이고, 그럴 것 같기도 했지만... 자신을 죽일 존재로 적대자들이 아닌 제로를 점지했다는 것은 의외였어요. 더욱이 자신을 죽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대체시키기까지 하다니...

물론 실질적으로 그의 위치는 여러 명이 노나 먹는 셈이긴 하죠. 합집국 의장과 기사단 CEO, 일본수상, 제로와 100대 황제, 이를 실질적으로 수행할 브레인까지...



를르슈의 새로운 직함명들을 보면 아주 혼자 다 해먹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따지고보면 다 이 녀석이 만든 조직들이니 분실물을 회수한 것에 불과하려나요.

그런데 이상한 건 세상의 유일무이한 패자가 됐으면서 저 직책명들을 굳이 지니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 직책에 해당하는 기관과 조직들도 그대로 유지시키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설령 그게 허울이나 얼개뿐이라도 말입니다. EEU도 굳이 잡아먹지 않고 냅뒀고요.


이런 행로를 보면 이 녀석도 독재자 한 명만 쓰러진다고 곧바로 평화가 자리 잡을 만큼 세상을 만만한 게 생각한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즉 자신이 승하한 후, 간신히 찾아온 기회를 확실히 살릴 수 있는 조직체와 인재들을 남겨뒀던 겁니다. 물론 직접 잡아들인 이전의 수하들이자, 최대의 적들도 마찬가지 선에서 살려뒀던 거고요.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비록 절대악이라곤 하나 세계의 축이 된 자신의 공백을 메울 새로운 상징으로써 제로를 준비한 겁니다. 그러고 보면 브리타니아 내에서 말썽을 부릴 법한 능력이나 성향, 세력을 가진 파벌과 재벌들을 쓸어버리다시피 한 것도 호랑이 죽은 후에 엉뚱한 여우가 나서는 걸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던 거죠. 물론 요 두 달 동안에도 흑기사단을 잡아들이면서, 산발적인 반항조차 모조리 잠재웠겠죠. 하긴 전술의 의미를 날려버린 최종병기까지 손에 넣은 놈에게 제대로 개길 방도나 있었을까 싶습니다만.  


브리타니아를 먹은 상황에서 합집국 가맹 후 차분히 일을 풀어갔으면 어땠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슈나이젤이 바쁘게 다모클레스를 띄우고 있었던 데다, 애시당초 슈나이젤을 비롯해 모든 인간을 적으로 돌리는 게 당초목적이었으니 원. 이런 자충수를 둬야만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묶은 사념들 때문이기도 하죠. 초합집국에 가입해서 일을 잘 처리했다 쳐도 브리타니아가 그동안 타국에 저지른 짓거리에 대한 원념이 사라지진 않을 테고 이는 결국 새로운 분쟁을 유발할 공산이 충분하죠.


를르슈 나나리, 슈나이젤의 생각은 비슷하면서도 엄연히 달랐죠. 슈나이젤은 인간의 마음 자체를 고려하지 않고, 평온을 영원토록 고정시킬 시스템으로써만 다모클레스를 이용하려 했습니다. 나나리는 여기서 한 술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의 증오와 공포를 한 곳으로 집중시키려 했죠. 그러나 두 사람 다 결국 다모클레스를 존속시켜야 한다는 점에선 차이가 없었습니다. 


를르슈는 자신에게 증오를 집중시켜 민족과 계층간의 불만마저 스스로에게 수렴시켰는데, 여기까지는 나나리와 비슷했으나, 이 시점에서 카타르시스를 통해 해묵은 원한들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거나 일시적으로 공백상태로 만든 후, 제로라는 새로운 구심축을 기점으로 대화의 장을 자발적으로 만들게끔 했던 거죠.

그러기 위해서 흑기사단과 합집국을 비롯한 연합시스템을 남겨뒀던 거고요. 물론 이 와중에 새로운 분쟁이 발생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하거나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니까요.

하지만 그런 가능성마저 포함해서 인류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죠. 자신이 기어스를 통해 기회를 얻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증오의 공백상태를 일시적으로 만드는 것뿐, 결국 그 기회를 좌우하는 것은 ‘인간’이니까요.

언젠가 반역자 제로나 악역황제의 뒤를 잇는 새로운 혼돈이 재차 도래할지도 모르고, 다모클레스와 프레이야가 다시 만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저 지금은 아니길... 그저 얼마 안 되는 기간이라도 세상 사람들이 같이 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항구적인 평화는 있을 수 없지만, 영원한 전쟁도 존재하지 않다는 보편적인 믿음을 실체화시키겠다는 듯이 말입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전쟁이 나든 평화가 유지되든 그건 남은 자들의 몫이며, 를르슈가 그나마 할 수 있었던 일은 예전에 쓰던 콜사인대로 제로에 가까운 시작점을 제공하는 것뿐이었던 겁니다. 



 Continued Story




말미에 흘러나온 배경음이 '컨티뉴드 스토리'였죠. OST 들을 때 이거 언제 나오나 했는데 말입니다. 마왕이 죽은 바로 다음 장면에 누군가가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듯 창문을 여는데, 침대 밑의 운동기구를 보면서 운동매니아인 왈가닥이란 걸 짐작할 수 있었죠. 


카렌의 앨범에는 를르슈만이 아니라 스자쿠도 있는데, 두사람의 진실과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같이 세상을 뜬 ‘친구들’을 기리고 싶었던 거겠죠. 사진 중에 합집국 설립과 동시에 일본공략직전에 찍은 기념사진-사요코와 제레미아, 성각도 포함된-이 있더군요. 나오토 팀의 초창기 시절도 보이는데, 이노우에와 요시다, 전직 도예가와 등 돌리고 선 나오토가 보이더라고요. 그녀 자신은 참가 못했던 밀레이의 졸업사진과 죽은 디트할트와 아사히나의 식사사진, 그리고 게임에서 밀레이의 변덕으로 들러야했던 온천여행기념사진도 있더군요. 

카렌의 앨범은 과거 그리고 현재의 빛나던 순간과 그늘지던 시절도 모두 아우르고 있는데, 그녀의 변모를 단숨에 보여주죠.


후반부에 나온 카렌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본작의 주제와 결과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녀는 감독 자신이 본작의 테마를 상징하는 인물이라 평한 존재입니다. 브리타니아와 일본 양쪽의 피를 동시에 이었지만, 양자의 가교가 아닌 분열과 투쟁을 선택했던 처자니까요. 그랬던 그녀가 나름대로 변화하면서 많은 걸 받아들이게 됐기에 본작은 그녀의 회고와 평가로 마무리 되야 했던 겁니다.    


카렌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던 홍련의 키를 목에 걸며, 스스로의 실체를 숨기기 위해 항상 단정하게 내렸던 머리칼을 풀어헤칩니다. (삐친 머리로 타고난지라 무스를 왕창 쓰곤 했죠.)

게다가 일본인 거주 구역에서 재활에 어느 정도 성공한 어머니와 다시 살아가고자 했던 바램마저 이뤘더군요. 그리고 일본인 거주구에 살면서 애쉬포드 학원에 다니는 그녀의 행동만 봐도 그녀 자신과 세계의 변모를 알 수 있었죠. 일본이 해방됐지만, 애쉬포드 학원은 아직도 남아있으며, 브리타니아인과 일본인이 그럭저럭 같이 지낼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겁니다. 그녀 또한 신분위장을 위해서만 다니던 학교를 다시금 다니기로 했으며, 밀레이도 여전히 일본에 남아 활동하죠.


오우기의 결혼식 사진에서 그토록 치고받던 놈들이 한자리에서 서로를 축복하는 양태를 통해 한 청년의 가면이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했는지 확실히 가르쳐주죠.

그녀가 를르슈의 사진을 보며 웃는 게 미소가 참 따사로운데... 그녀가 애쉬포드 학원에 다시 다니기 시작한 건 이전에 청년과 나눴던 약속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런지.


어떤 의미로 본작의 진주인공이라 할 기사양반의 현황도 나오는데, 진짜 본작의 극단성이랄까, 추락과 상승을 이토록 제대로 구현한 인물이 달리 있을까요. 그토록 불 받던 오렌지란 칭호마저 자랑스레 받아들이기에 이르렀으니... 오렌지 농장을 고집하는 것도 자신의 충의를 계속 견지해나가겠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한창 일하던 중에 태양을 올려보는데, 오렌지 빛으로 타오르는 태양에서 인간의 악의가 결집된 물건이 소멸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주군의 진의를 아는 충신답게 햇살을 쬐며 주공을 다시금 떠올린 건 아닐지.



그리고 제레미아가 올려보던 태양에서 다시금 지상을 비추는 순간, 또 달리 청년의 진실을 아는 여인의 근황도 나옵니다. 이전엔 성을 보는 C.C.의 엔딩삽화가 과거의 장면이 아닐까 했었는데, 다시 보니 C.C.가 최종화의 여행길에 이전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던 곳을 다시 찾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닫으며.




 리발이 그저 매일같이 즐겁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군요. 나나리도 비슷한 말을 했는데, 를르슈는 안 그랬을까요... 처음에는 그도 그런 뜻에서 발걸음을 내딛었지만, 이게 어느 새 업보를 쌓아가 자신만의 행복을 향유할 자격을 스스로 잃었죠. 그가 나나리의 절규를 들으며 눈을 감는 게 그래서 슬펐습니다.  


를르슈의 죽음이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분통이 터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일본애들이 흔히 하는 얘기가 있죠. 이기고 도망갔다고요. 이런 망할 녀석이. 자기만족, 자기미화, 독선... 이것들을 이렇게까지 관철하는 주인공도 정말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전에 유피의 죽음과 오욕을 보면서 이놈은 절대 구원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와 흡사한 죽음을 맞는 걸 보면서 다시금 화가 나더군요. 당시 열이 받혔던 또 다른 이유는 유피가 저렇게 망가진 상황에선 그녀를 죽이고 이용하는 것 말고 다른 수가 없다는 걸, 어쩔 방도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머리가 막힌 건진 모르겠습니다만, 저런 식의 자살극에 화가 나면서도 저 지경이 된 상황에서 다른 수가 있을지 생각해봐도 영 감이 안 오더군요. 


돌이켜보면 이 친구는 근본적인 변화랄까 성장을 겪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타니구치 감독의 주인공들이 원체 변화나 성장을 지독히도 거부하는 녀석들이 많긴 하죠. 마치
‘사람이 그렇게 쉽게 성장한다는 게 말이 되냐? 성장이 사태해결의 열쇠가 되기는 하냐?’라고 말하듯 말입니다. 물론 그들도 변화하기는 하지만, 종당엔 그 변모가 일반적인 성장을 겪게 하기보단 본연의 자기 자신을 되찾고 깨닫는 과정에 불과하더군요.

대표적인 예가 ‘스크라이드’의 카즈마로 자기한테 소중한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도 ‘죽여봐.’라면서 태연히 걸어가 존내 패는 놈이거든요. 카즈마와 류호도 그토록 많은 일을 겪었지만, 종당엔 또 다른 자신이자 짝패라 할 앙숙과 결판을 내겠답시고 대판 싸움을 벌이는데, 이 와중에 둘은 그동안 획득해온 힘을 모조리 쏟아내더니, 너덜너덜한 몸만 남은 상태에서도 처절한 개싸움을 벌여요. 더욱이 싸움이 마무리된 후에는 늘 그랬듯 끝까지 황야를 돌아다니며 한쪽은 질서를, 다른 쪽은 투쟁을 추구하고요.


를르슈도 마찬가지였죠. 문제가 더 심각한 건 이놈이 지독하게 약한 놈이란 겁니다. 체력만이 아니라 정신도 의지도 무지하게 약하고 유일한 밑천이라 할 머리통은 기분에 따라 아이큐가 오르락내리락하고 무기인 기어스도 맹점투성이고... 그런 주제에 오기와 치기, 승부욕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강해서 스스로의 균열을 종종 메꾸긴 합니다만. 물론 그 자신도 스스로가 얼마나 약한지 잘 알고 있기는 하더군요. 이 때문에 늘 자신이 직접 맞서선 택도 없을 적과 마주할 때마다, 여타 주인공들보다 훨씬 날이 서고 잔인하면서도 교활한 방식으로 맞서죠. 외부의 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그늘이나 약한 구석과 마주할 때도 그렇고요.



유피가 망가졌을 때, 이 녀석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은 처음부터 이를 의도한 냉혈한- 제로라고 되뇌었으며, 셜리가 죽었을 때는 기어스 교단과 로로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자신의 기어스는 냅두는 추태를 보이죠. 그 모든 행동에 자신의 책임이 그토록 컸는데도 말입니다. 이놈이 이걸 자각 못한 것은 아니에요. 셜리가 죽었던 에피소드의 예고에서 정말 처절하게 울더라고요. 자신 때문에 그토록 몇 번이나 욕보고 죽어간 정인에게 너무도 사과하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기회도 잃었으니 어떻게 속죄해야 하냐고 탄식하면서요. 너무도 미안하고 스스로의 죄업을 알고는 있지만, 이걸 있는 그대로 인정했다간 주체 못할 정도로 무너질 테니 어떻게든 책임을 돌리고, 미칠 것 같은 심경을 딴 데로 쏟았던 겁니다.



한편으로 또 웃기는 게, 이렇게까지 가면과 거짓말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주인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보통 전투력이나 로봇조종, 혹은 진실로 세상을 바꾸는 여타 주인공들과 달리 요놈은 끝까지 페르소나로 버팅기고
‘다 이루었느니라!’하면서 죽기까지 하죠.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감독의 스타일 때문이기도 합니다. 원래 타니구치 감독의 스타일은 지나치게 자아가 강한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있는 대로 드러내며 툭닥거리는 게 많죠. 이놈도 자기 자신에겐 솔직한 편이지만, 그전까지의 주인공들과 달리 외려 가면을 적극 이용하고, 끝까지 스스로의 악의와 가면을 관철합니다. 그것만이 이 약골마왕에게 허락된 무기이자, 부정 못할 본질이었거든요.


사실 본편의 전반부에선 타니구치 감독 특유의 ‘원초로 돌아가 부딪혀야 한다’는 느낌이 잘 드러나죠. 그렇다고 이 양반이 커뮤니케이션이나 장단 맞추기를 부정하진 않습니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무식할 정도로 에고이스트인 주인공들이 막가는 대로 부딪히곤 하는데, 그렇게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일부를 도려내야지만 배울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자아를 깎아가는 과정을 겪고 나서야 진솔하고 소탈하게 서로를 인정할만한 그릇을 가질 수 있다는 거죠. 카렌의 마지막 생활상도 그래서 의미를 지니는 거고요. 어머니에 대한 원망 때문에 자당이 한 번 망가질 정도로 몰아붙이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그녀는 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게 무엇인지 깨닫고 이를 절대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판에 가서는 그토록 부정했던 자신의 핏줄 중 반쪽도 그런대로 수용하며 자신을 감추지 않고 당당히 살아가죠.


아무튼 청년의 가면은 결국 작중에서 누구보다 약했던 그가 버티기 위한 자구책이었지만, 동시에 진실을 부각시키는 장치이기도 했죠. 가면은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감추기 위한 방패로써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진실로 전해야만 하는, 혹은 전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일부를 두드러지게 하기 매개이기도 했던 겁니다. 


한편으로 물 건너에선 너무도 착해빠진 마왕이었다는 평가도 하던데... 이런 면모 때문에 사태를 거듭 악화시켰던 걸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죠. 쓸데없이 보호본능이 강하기도 했고.... 나름대로 모랄이나 정의감도 있었지만, 이게 죄다 오기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사실이죠.


개인적으로 이놈의 가장 큰 죄는 남은 지인들과 정인들에게 너무도 큰 부채감을 안겼다는 점이라 봅니다. 평생동안 이고 갈 짐덩이들을 안겨줬죠. 이 친구를 떠올릴 때마다 개운치 못한 데다 온몸을 짓이기는 듯한 애증에 시달릴 테니까요. 저 자신도 그렇고요.



ETC...




제로. 어이, 언제부터 제로가면이 ‘친구’가면이 된 거냐?


나나리. 이놈의 악수장면 때문에 많은 분들의 의견이 분분하죠. 나나리가 단순히 감각이 발달한 게 아니라 사이코 메틀러라는 둥, 춘부장이 이전에 모가지를 잡았을 때, 코드가 옮겨가 불사자가 된 를르슈의 감정이 고양되어 이전의 C.C.처럼 기억이 흘러간 거라는 둥...



스자쿠. 이 자식, 설마 알비온 폭발 후에 제레미아처럼 다친 데를 개조하기라도 했나? 아주 끝장을 보네요. 어쩌면 ‘나이트메어 오브 나나리’에 나오는 제로 스폰(...)의 전설은 여기서 탄생한 걸지도... 마크로스 씨리즈가 실화를 다양하게 영상화했다는 설정인 것처럼 ‘나이트메어 오브 나나리’도 후대에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란 식이면 꽤 재밌겠는데 말이죠. 애는 이제 큰일났습니다. 를르슈의 그 말도 안 되는 손짓발짓과 장광설을 어찌 흉내내야 할런지. 


제레미아. 이 양반 설마 경애하던 주군과 닮았다고 음흉한 속셈에서 데려온 건 아니겠죠? 근데 아냐가 결혼식에 참석한 걸 보면 그냥 이전의 제레미아처럼 은혜를 갚을 겸 도와주러 온 건 아닐까요. 다른 녀석들과 달리 제레미아는 끝까지 악역황제를 따르던 인물이니 아마도 정치적인 수배범으로 찍혀 공식석상엔 못나가는 처지가 됐겠죠. 생각해보면 제레미아가 제로 레퀴엠을 인정한 게 용해요. 그토록 충성에 집착하는 녀석이 주군이 자결하겠다는 걸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후속조치까지 취하다니. 이 녀석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셜리. 를르슈의 주마등에서 가장 먼저 나오더군요. 그리고 카렌의 사진에서도 바로 뒤에 서있었죠. ...쩝.

오우기. 능력도 별반 없는데다, 배신을 때린 주제에 자리도 얻고 역사적으로 명망을 남기며, 행복한 가족을 얻는 것 때문에 욕을 배터지게 먹고 있습니다. 재주는 를르슈가 넘고 돈은 요놈이 챙긴 것 마냥 너무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결말에 이른 게 그가 를르슈의 몫마저 행복을 가로챈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녀석이 명성이나 감투에 기뻐할만한 체질도 아닌데 이걸 진짜 득봤다고 할 수 있을까요. 원래 교사생활에 만족했고, 그런대로 소박한 가정이나 꾸리는 게 꿈이었던 친구였잖습니까? 나오토 팀의 리더 자리나 저항운동에 참여한 동기도 다 죽은 친구에 대한 우애와 책임감에서 떠맡은 거였고... 수상 자리도 결국 를르슈의 행동에서 느낀 부채감을 채우고자 마지못해 맡은 게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이 친구는 스자쿠랑은 다른 의미에서 를르슈와 대비되는 인물이었단 말이죠. 그토록 다른 데도 묘하게 비슷한 궤도를 자주 취했던 것도 그렇지만, 뭐랄까 흔히들 말하는 영웅의 양과 음을 나눠가진 것 같달까요. 원래 죽은 나오토 대신에 카렌의 오빠노릇도 하던 그가 제로의 등장이후 두목자리를 양보하는 것과 동시에 오빠노릇도 를르슈에게 넘어가다시피 했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해집니다.


슈나이젤. 표정이 진국이죠. ‘나 여기 왜 있지?’라고 말하고 싶은 듯한... 생각해보면 2인자 노릇에 이골이 나있고, 원체 집착이랄 게 없는 성격이니 평생 제로와 나나리를 보좌하게 된 것도 나름대로 어울리는 결말이 아닐까요? 원하던 것과는 좀 달라도 그 자신이